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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26, 2010

스포일러가 널려 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무의식을 조작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 영화에서는 최대 여덟 명까지 누군가의 꿈을 공유하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가 나온다. 꿈을 꿀 때는 사고의 속도가 수십 배 빨라지기 때문에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면 1천배 이상의 시간을 체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코브 일당은 피셔의 생각을 바꿔치기 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피셔를 잠들게 하고 그를 미리 계획된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이들의 목표는 피셔가 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사를 둘로 분할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이들은 3단계의 꿈을 설계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행기가 파리를 출발해서 뉴욕에 닿기까지 10시간 뿐이지만 3단계의 꿈을 거치면 수개월로 늘어날 수도 있다. 물론 피셔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첫 번째 꿈을 꾸는 사람은 유서프다. 유서프가 미리 설계된 꿈을 꾸고 피셔가 여기에 초대되는 셈이다. 다음 단계의 꿈으로 넘어갈 때 한 사람은 깨어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잠든 이들을 깨워줘야 한다. 두 번째 꿈으로 들어갈 때는 유서프가 남아서 이들을 돌보고 아서가 꿈을 꾼다. 세 번째 꿈으로 들어갈 때는 아서가 남고 임스가 꿈을 꾼다.

(An Illustrated Guide To The 5 Levels Of Inception, 출처는 : http://www.cinemablend.com/new/An-Illustrated-Guide-To-The-5-Levels-Of-Inception-19643.html)

첫 번째 꿈에서 피셔는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마스크를 뒤집어 쓴 괴한들이 바로 코브의 패거리들이다. 괴한들은 피셔에게 아버지의 금고 번호를 말하라고 협박한다. 코브의 동료인 임즈가 피셔의 삼촌, 브라우닝으로 변신해 피셔의 아버지가 회사를 분할하기를 바란다는 암시를 흘린다. 코브 패거리는 피셔의 무의식이 만든 총 든 남자들에게 쫓긴다. 코브에게 인셉션을 지시한 사이토는 여기서 총에 맞는다. 코브 패거리와 피셔는 쫓기는 승합차 안에서 다시 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코브 패거리는 작전을 수정한다. 예상치 않게 총을 든 남자들이 나타난데다 사이토가 총을 맞았기 때문이다. 사이토는 의뢰인일 뿐만 아니라 코브의 살인 누명을 풀어줄 사람이다. 사이토에게 문제가 생기면 코브는 공항에 내리는 즉시 체포될 수밖에 없다. 코브 패거리는 서둘러 두 번째 꿈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꿈에서 코브는 누군가가 피셔의 무의식에 침입하려 한다면서 피셔에게 브라우닝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브라우닝은 사실 피셔가 만든 무의식인 셈인데 피셔는 여전히 이게 꿈이라는 걸 모른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 피셔는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코브 패거리를 믿기로 한다.

코브 패거리와 피셔가 호텔에서 세 번째 꿈에 빠져든 뒤 첫 번째 꿈에서 코브 패거리가 탄 승합차가 다리의 난간을 부수고 강물로 뛰어내린다. 강물에 뛰어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초 남짓, 그렇다면 두 번째 꿈에서는 3분 정도, 세 번째 꿈에서는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은 셈이다. 승합차는 추락하고 있고 코브 패거리는 잠이 든 채 차 안에서 붕 떠 있는 상태다. 두 번째 꿈은 무중력 공간이 된다.

세 번째 꿈은 눈 덮인 요새다. 코브 패거리와 피셔는 군인들을 피해 요새 한 가운데 금고에 잠입한다. 그러나 그때 나타난 코브의 죽은 아내 맬이 피셔를 쏘아 죽인다. 맬은 당연히 코브가 만든 허상이다. 그 순간 아리아드네가 맬을 쏜다.

꿈속에서 죽으면 원래는 잠이 깨게 되지만 이들의 꿈은 정해진 시간 전에는 깨어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그래서 죽어도 깨어나지 못하고 꿈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곳을 꿈의 밑바닥, 림보라고 한다. 림보에 들어가면 잠에서 깨어나도 정신은 깨어나지 않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피셔가 식물인간이 되면 모든 계획이 실패하게 된다. 첫 번째 꿈에서 죽은 사이토 역시 림보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코브와 아리아드네는 피셔를 따라 림보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맬을 다시 만난다.

코브와 맬은 림보에서 50년을 보낸 적이 있다. 이게 무의식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다면 이곳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공간이 된다. 맬은 이곳을 현실세계라고 착각해서 현실로 돌아온 뒤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다. 림보에 남아있는 맬은 코브의 그리움과 아쉬움, 죄책감이 만든 허상인 셈이다.

코브는 림보에서 헤매는 피셔를 찾아 세 번째 꿈으로 돌려보낸다. 아리아드네도 건물에서 떨어뜨려 돌려보낸다.

세 번째 꿈으로 돌아온 피셔는 금고 안쪽에서 죽은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셉션이 성공한 셈이다.

임스가 요새 바닥에 폭탄을 터뜨리자 이들은 두 번째 꿈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꿈에서는 아서가 엘리베이터에 폭탄을 터뜨려 첫 번째 꿈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첫 번째 꿈에서는 승합차가 강물에 부딪히면서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돌아오지 못한 건 코브와 사이토 뿐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 코브는 림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이토를 찾아간다. 사이토는 코브를 기억하지 못한다. 코브가 이게 꿈이란 걸 알려주자 사이토가 권총을 집어드는 장면이 나오고 영화는 코브가 비행기 안에서 잠이 깨는 장면으로 건너뛴다.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사실 어느 쪽이든 큰 의미는 없다. 사이토가 코브를 쏜 뒤 자살을 해서 림보에서 빠져나왔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고(애초에 죽어도 깰 수 없도록 설계된 꿈인데 림보에서 죽으면 킥이 된다는 건 좀 논리적으로 이상하긴 하다.) 그것과 별개로 예정된 시간이 돼서 꿈에서 빠져나왔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코브가 영원히 림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마지막 장면은 그냥 코브의 상상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해외 영화포럼에서는 애초에 이 모든 게 코브의 장인인 마일즈 교수가 만든 시나리오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인셉션을 당한 건 피셔가 아니라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코브라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마일즈 교수가 어떻게 알고 공항에 마중을 나왔을까. 그가 소개해준 아리아드네가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의 미로를 빠져 나오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미셀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과 앤디+래리 워쇼스키 형제의 메트릭스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를 넘어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꿈이 꿈이라는 걸 알 때 우리는 상상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이라는 걸 자각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꿈에서도 물리적 법칙과 인과관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공간을 마음대로 뒤흔드는 아리아드네는 오히려 특별한 경우다. 많은 훈련을 거치거나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꿈은 무의식의 발현일 뿐 꿈이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무의식의 공간에 침입해서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가능하다는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한다.

흥미로운 건 림보라는 공간이다. 꿈속에서 죽고도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림보로 간다. 림보는 이들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이다. 피셔가 빠져든 림보에는 코브와 맬이 만든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이토가 수십년을 보낸 곳 역시 같은 공간이다. 이건 마치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을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꿈의 밑바닥에 모두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코브는 림보에서 50년을 보내면서도 그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지만 폭삭 늙은 모습의 사이토는 코브를 알아보지 못한다. 첫 번째 꿈에서 이미 죽고 림보로 넘어온 사이토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꿈속에서 죽었다는 사실 역시 당연히 알지 못한다. 전원 코드가 빠진 냉장고에 갇혀서 얼어 죽는 것처럼 사이토는 그게 현실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림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늙어버렸다.

메트릭스의 네오처럼 림보에서 코브는 이곳에서 전지전능에 가까운 놀라운 능력을 갖지만 그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코브의 그런 능력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자각할 때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림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를 나름대로 해피앤딩을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 같다. 감독이 다양한 해석을 열어두고 있지만 피셔가 인셉션의 타깃이었고 그 과정에서 코브 역시 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정도가 무난한 해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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