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한국도 복지병? 기본부터 하자.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23, 2010

한국경제가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라는 제목으로 기획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신문은 12일 “한국, 복지병에 빠지나… 복지예산 년 17%씩 급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복지 과잉으로 재정이 파탄난 남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복지병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선거 때마다 복지를 늘리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인해 한국 역시 머지않아 재정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 복지 지출의 증가 속도가 최근과 같이 이어진다면 6년 뒤 국가 전체의 생산력 대비 복지 지출 규모가 재정위기 진앙지인 그리스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1997년 3.8%에서 2008년 8.3%로 10여년 동안 2.2배로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16.5%에 이른다.

이 신문은 복지지출이 그리스처럼 늘어나면 재정위기에 빠진다는 이상한 등식을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보다 복지지출이 많은 나라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010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공공 지출 비중은 2005년 기준 6.9%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 OECD 평균 20.6%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예산정책처 자료에 인용된 2008년 통계로는 8.3%지만 역시 선진국 평균 대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 신문은 “앞으로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될 경우 복지 지출 비중은 6년 후 20%에 이른다”면서 “이는 복지 과잉으로 재정위기에 몰린 그리스의 복지 지출 비중과 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가 복지 과잉으로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복지 비중이 늘어나면 망한다는 논리전개는 거의 억지에 가깝다.

그리스가 복지 지출이 지나치게 많아서 재정위기를 맞았다면 그리스보다 복지 지출이 더 많은 나라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이 과연 그렇게 부담스러운 수준일까. 설령 복지 지출이 연 평균 16.5%씩 늘어난다고 해도 그동안 국내총생산(GDP)은 전혀 늘어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까. 그런데도 이 신문은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이 굉장히 위험스러운 수준인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일 안 하면 지원 더 받아… 기초생활보장 근로의욕 꺾는다”는 14일 기사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신문은 “한국보다 앞서 복지제도를 시행한 선진국들은 복지 수혜자들의 근로 의욕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현상을 이미 경험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은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엄격히 구분한 복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그들이 가난한 건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신문은 마치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제도에 기대어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본질을 왜곡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고 나면 이 제도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정부에서 지급하는 최저생계비에도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일자리를 구하면 상당한 수입을 얻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왜곡을 넘어 악의적인 비난에 가깝다.

이 신문은 저소득 취약 계층의 생존권에 직결되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는 무관심하면서 오히려 이런 제도가 이들의 근로의욕을 꺾는다고 비판한다. 이 신문은 그 대안으로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 도입하고 있는 근로장려금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축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보완하는 제도다. 이 신문의 주장은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건강보험은 돈 먹는 하마’라는 19일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은 “올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적자가 1조8천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많은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건강보험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의료비 증가율은 연 평균 5.2%인데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급여비 증가율은 연 평균 13.9%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건강보험의 재정파탄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건강보험의 경영이 방만해서라기 보다는 건강보험이 지속적으로 보장성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0%를 넘어섰다. 병원비가 100만원 나온다면 환자가 부담하는 돈은 40만원이면 된다. 이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한다면 해법은 보장성을 낮추거나 보험료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이 신문이 건강보험을 공격하는 진짜 이유는 다음 문장에서 드러난다. 이 신문은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건강보험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민간 의료보험 활용을 더 늘리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면서 “민간 의료보험은 실손형 보험의 인기 등으로 최근 연 15%가량씩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은 공적 보험을 강화하자는 최근 진보진영의 움직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도 해묵은 레퍼토리다. 보수·경제지들은 이대로 가면 연금이 고갈된다거나 어차피 용돈 수준 밖에 안 된다거나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쏟아내 왔다. 이 신문은 “2050년께 국민연금의 잠재부채가 GDP의 100%를 넘어설 것”이라면서 “개혁이 늦춰질수록 후손이 부담해야 하는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다.

많은 보수·경제지들이 국민연금이 머지않아 고갈되고 급여를 못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심리를 확산시키고 있지만 국민연금이 현재의 수정 적립식 방식에서 부과식으로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내가 낸 돈을 쌓아뒀다가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방식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낸 돈으로 나이든 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타협이 되는 셈이다. 고갈을 늦추는 게 능사가 아니라 고갈 이후를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 신문은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17일 기사에서는 “현재 연금은 저소득 계층일수록 낸 돈에 비해 받아가는 돈의 비율이 매우 높다”면서 “이처럼 수익배수가 높다보니 국민연금이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저소득 계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걸 비난하는 건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무시했거나 기본 취지 조차 이해하지 못한 악의적인 비판이다.

물론 이 신문이 지적하는 것처럼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인기 영합주의와 선심성 공약에도 문제가 있다. 재정 확보 방안도 중요한 화두다. 그러나 적어도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복지제도의 근간을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근로의욕을 꺾는다거나 건강보험을 축소하고 민영 의료보험을 키우자거나 국민연금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조장하는 주장은 본질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스웨덴 등 북유럽 나라들이 복지 혜택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사회복지 모델의 근본적인 결함이거나 폐기 수순이라기보다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궤도 수정이라고 보는 게 맞다. 선진국 평균과 비교해 복지 지출 비중이 3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우리나라가 벌써부터 과잉복지로 인한 복지병이나 무임승차를 우려하는 건 지나친 호들갑이다.

근로의욕을 높이려면 복지 기생을 우려할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적극적인 일자리 대책과 최저임금 현실화가 선행돼야 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재정악화를 해결하려면 현실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보험료에만 의존해 혜택을 축소할 게 아니라 국고 보조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이 신문은 복지예산이 급증하고 있다며 엄살을 떨고 있지만 선진국 수준까지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복지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