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기자들 견학으로 집단 백혈병 의혹 씻을 수 있을까.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4, 2010

집단 백혈병 발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삼성전자가 문제가 된 기흥 반도체 공장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을 제외시킨 데다 취재에 필요한 관련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라인과 이번에 공개되는 라인이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언론이 어떤 보도를 쏟아낼 것인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삼성전자는 12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일부에서 반도체 생산라인의 근무환경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오는 15일 (경기 용인)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언론매체 기자들에게 제조공정과 생산라인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83년 반도체 생산라인이 설치된 이래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최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13일 성명을 내고 “2009년 서울대 보고서와 2008년 노동부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고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들어가서 현장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반도체 공장은 전문적이고 복잡한 공정”이라면서 “기자들의 견학 수준이 아닌 진짜 취재가 가능하려면 근무 경험자가 현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가 뭔지 사전에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삼성이 공개하겠다고 밝힌 5라인과 S라인은 자동화된 라인으로 백혈병 발병자들이 일했던 사고라인과 환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보고서가 사전에 공개돼야 어느 공정과 어느 장비를 확인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노동부가 2008년 산업안전공단과 공동으로 전국 13개 반도체 제조업체 일제조사를 실시한 이 보고서에는 반도체 업체별 주요화학물질 취급현황 등이 담겨있다.

백혈병 피해자들 모임인 반올림은 14일 성명을 내고 “이번 공장 공개는 우리가 요구해 왔던 투명한 정보공개와는 거리가 멀다”면서 “이런 방식으로는 의혹과 불신을 해소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박지연 씨의 사망을 계기로 증폭된 삼성반도체 직업성 암 피해 사실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삼성 내부의 동요를 신속하게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백혈병 피해자들이 일했던 1라인과 2라인은 2007년 9월 이전에 폐쇄됐고 3라인은 지난해 3월 LED 공정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S라인은 가장 최신에 증설된 자동화 라인이다. 사람이 거의 필요 없는 정도로 대부분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다. 백혈병 피해자들이 일했던 환경과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함께 공개되는 5라인은 화학물질을 직접 다루는 공정이 아니다.

반올림은 취재 기자들이 유의할 점을 몇 가지 제시했다. 외부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 우주복처럼 생긴 방진복을 입는데 실제로 그런 방진복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가 됐던 지하 배관 역시 개선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작업이 이뤄지는 서비스 구역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올림은 “과거 근무했던 노동자들 경험을 들어보면 외부 견학이 있을 때 유해화학물질을 치워놓고 사전 교육을 시켜 입단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5라인에서 일했던 정애정씨는 “방진복과 방진화에는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을 것”이라며 “만약 새 방진복을 걸어놓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또 “평상시 작업 환경이라면 엔지니어들이 보호도구 없이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화학물질이 묻어있는 챔버를 청소하거나 가스통을 교환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방독면 같은 호흡기 관련 보호도구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한 차례 공개로 모든 의혹이 해소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반도체 생산 라인이 지저분하고 화학물질이 널려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어서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왜 1~2라인을 공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나마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게 5라인이라서 그런 거고 자동화된 S라인은 이왕 오신 김에 최신 설비를 보고 가시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왜 피해자들을 참석시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잖아도 참가 인원이 너무 많아 하루에 모두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는 인원을 다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향후에 또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5일 공장 공개에는 주요 언론사 기자와 홍보 담당자를 포함 7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장 앞에서는 반올림 관계자들 집회도 예정돼 있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