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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2’에서 본 동해.

해가 바뀌던 그 시간에 나는 영화 ‘2012’를 보고 있었다. 새해 첫날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를 보다니 그것 참 묘한 기분이었는데, 마침 한살을 더 먹느니 그냥 이대로 멸망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라 묘하게 감정이입이 됐다.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었는데, 영화 중간에 “Pull up the Japanese sea border”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자막은 “동해 좀 잡아봐”라고 돼 있었다. ‘Sea of Japan’이 아니라 ‘Japanese sea border’니까 정확히 ‘일본해’라기 보다는 ‘일본 앞바다’ 정도의 의미일 텐데 번역자가 신경을 써서 고친 듯하다. 그런데 과연 이 장면에서 ‘East sea’라고 했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의미가 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07년 외교통상부가 세계 75개국에서 발간된 353개 지도를 조사한 결과 ‘동해’를 단독 표기한 지도는 우리나라 지도 외에는 없었다. ‘일본해’로 단독 표기한 경우가 전체의 74.2%, ‘동해’와 ‘일본해’를 동시에 표기한 경우가 23.8%였다. 물론 최근에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동해’는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명칭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 동쪽 바다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건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일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동해’는 ‘서해’와 ‘남해’처럼 우리나라의 주관적인 명칭일 뿐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동해’일 뿐 일본 입장에서는 서해일 수도 있고 우리가 ‘동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에는 우리의 ‘남해’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우리의 동쪽 바다를 국제적으로도 ‘동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건 애초에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과거 기록을 봐도 ‘Mar Coria’나 ‘Mare di Corai’, ‘Mar de Correr’, ‘Sea of Corea’ 등의 ‘고려해’ 또는 ‘한국해’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일본 대로 ‘Mer du Japon’이라고 적힌 기록을 들고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해’로 쓸 것이냐 ‘일본해’로 쓸 것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여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동해’를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말고는 아무도 동해를 ‘동해’라고 부르지 않는데 ‘일본해’ 옆에 괄호 열고 닫고 병기라도 해달라고 떼를 쓰는 상황이 됐다.

결국 ‘일본해’를 ‘동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우리의 자기만족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애초에 ‘한국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여러 나라가 걸쳐 있는 해역에 특정 나라의 이름을 쓰는 게 옳지 않다면 전혀 다른 중립적 이름을 내걸었어야 한다. 이런 논란은 결과적으로 ‘일본해’에 힘을 실어줬다. ‘Sea of Japan’이라고만 쓰던 걸 ‘Sea of Japan(East sea)’라고 쓰게 돼서 보기 좋은가. 언젠가 ‘East sea’라고만 불릴 수 있게 될 거 같은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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