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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드림, “네 인생을 바꿔봐!”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30, 2001

대중교통이 발달돼 있지 않은 인도에 서는 오토릭샤라고 부르는 세바퀴 오토바이가 택시처럼 널리 쓰인다. 조금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신나게 경적을 울려대면서 먼지 흩날리는 뒷골목을 누비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깝게 붙어 앉으면 세명까지 탈 수 있는데 요금은 그야말로 껌 값도 안된다.

오토릭샤꾼들은 보통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 100루피 정도 번다고 한다. 45루피가 1달러 정도니까 우리 돈으로 치면 3천원이 채 안되는 셈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오토릭샤를 몰아도 한가족 살림을 꾸려나가기에는 빠듯할 수밖에 없다. 연봉으로 따지면 700달러가 넘는 오토릭샤꾼들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낫다. 아직도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5달러밖에 안된다.

건널목에 차가 멈출 때면 거지들이 우루루 몰려와 손을 내미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동전이라도 집어주고 싶어도 한둘이 아니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길 안내를 맡아준 이삼성인디아의 카필은 그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으면서 유리창을 올리곤 했다. 거리 구석구석에서 거지들이 배고픔에 지쳐 죽어가고 있는데 카필은 차에 더러운 얼룩이 묻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장 정도 되는 직책을 맡고 있는 카필은 한달에 10만루피, 우리 돈으로 3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불쌍한 오토릭샤꾼보다 무려 300배 이상을 버는 셈이다. 물론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지 방갈로르 같은데 가면 카필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인도는 이처럼 노동력의 가치가 100배 이상 차이나는 나라다. 오토릭샤꾼들은 길거리 노점상에서 5루피짜리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지만 카필은 깨끗한 레스토랑에 가서 500루피짜리 정식을 먹는다. 카필이 갑부라서가 아니다. 인도에 는 5루피짜리 빵을 먹는 계층과 500루피짜리 정식을 먹는 계층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다. 비린내 나는 수도물을 그냥 마시는 계층이 있고 수도물을 마시면 큰일 나는 것처럼 기를 쓰고 생수를 사서 마시는 계층이 있다. 서로 생활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많은 인도 사람들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견디기 어려운 더위만큼이나 가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넘을 수 없는 빈부의 차이는 체념과 무기력을 낳았다. 창문 너머로 손을 내미는 거지들에게 동전 몇푼 던져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도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왜 이렇게 가난한가. 이런 엄청난 빈부의 차이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가난에 무관심한 카필에게 물었다. “가난도 운명이다. 우리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다들 다음 세상에서는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다.”

카필은 다른 사람의 가난을 운명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는 끊임없이 운명에 맞서 왔다. 10억 인구 가운데 카필처럼 500루피짜리 점심을 먹고 하인을 두고 자가용을 끌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3천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머지 9억7천만명과 다르다. 변화는 느리지만 사람들 의식은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당신의 삶을 바꿔드립니다!(We change your lives!)”

거리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컴퓨터 학원 압텍의 광고 간판이다. 압텍은 엔아이아이티와 함께 오늘날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일궈온 주역으로 손꼽힌다. 인도에는 이런 크고 작은 컴퓨터 학원이 1천여개가 넘는다. 동네마다 조금만 뒤져보면 압텍의 빨간 간판이나 엔아이아이티의 파란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도 사람들에게 컴퓨터 학원은 운명에 맞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나면 방갈로르에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셈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잠자고 있던 인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동네마다 컴퓨터 학원이 들어섰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소프트웨어를 배우러 몰려들었다. 해마다 13만명의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회사들은 아직도 사람을 못 구해서 야단이다.

지난 1981년 단돈 250달러로 시작한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 인포시스는 지난해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올라갔다. 컴퓨터 한대로 시작한 구멍가게 같은 회사가 20년만에 매출 2억달러에 시가총액 250달러의 거대한 기업으로 커버린 것이다. 인포시스의 나랴야나 머시 회장은 10억달러의 갑부가 됐다. 100만달러 이상을 거머쥔 임원들도 200명이 넘는다. 이만큼 확실한 인디안 드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까지 인도의 어떤 회사도 이만큼 놀라운 성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인도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도 당연하다. 숙명처럼 짓누르고 있던 가난을 떨쳐내는 길을 소프트웨어 산업 쪽에서 찾은 것이다.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 협회, 나스콤에 따르면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지난해 57억달러 규모까지 커졌다. 이 가운데 수출이 40억달러로 70%를 차지한다. 인도 전체 수출의 10.5%에 이르는데 이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경기가 주춤하면서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장성은 여전하다. 이 시장은 지난 5년동안 해마다 평균 55.2%씩 몸집을 불려왔다. 나스콤은 올해 시장 규모를 82억달러, 수출을 62억달러로 내다보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다. 인도의 모든 미래가 여기에 걸려있다.

인도의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값싼 인건비에서 비롯한다. 오토릭샤를 몰면 한달에 고작 60달러를 벌지만 인포시스에 들어가면 첫 월급으로 5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깜짝 놀랄만큼 파격적인 대우겠지만 그래봐야 미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된다. 임금은 필리핀이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인데 실력은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인도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과 인도는 정확히 12시간의 시차가 난다. 미국 회사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인도에 서는 그 일을 그대로 넘겨받아 밤새도록 마무리를 지어준다. 체계만 잘 잡혀있으면 굉장히 효율적인 업무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른 바 소프트웨어 서비스라는 개념인데 직접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하다가 조각조각 떼내어 건네준 작업을 메꿔주기만하면 된다. 큰 밑그림을 들여다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쪽에서는 무슨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주어진 조각을 시키는 대로 꿰어맞추기만 하면 된다.

언뜻 별다른 경쟁력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이미 포츈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185개 기업이 인도 기업들에게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맡기고 있다. 인건비만 터무니 없이 치솟지 않는다면 이같은 즐거운 공존공생 관계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정보기술의 거품이 빠지면서 호된 시련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도 사람들은 아직도 정보기술,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 산업에 절대적인 희망을 걸고 있다. 시장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값싼 인건비의 우수한 인력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어떤 나라도 이쪽 분야에서 인도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인도를 오랜 체념과 무기력에서 깨우고 계급과 계층을 아래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운명에 맞서는 힘, 인디안 드림이 몰고 온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하다. 중국만큼 폭발적이지 않지만 우리는 인도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정환 기자 jlee@dot21.co.kr

그래프, 막대그래프로 해주세요.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 매출 현황(단위 : 백만달러)
/내수/수출
1995년/350/485
1996년/490/734
1997년/670/1083
1998년/950/1750
1999년/1250/2650
2000년/1700/4000

기획안
1회.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 –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충 훑어볼 겁니다. 이삼성인디아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2회. 인도의 경쟁력 – 나스닥에 상장한 대표적 기업 인포시스와 잔사, 인도소프트웨어산업협회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3회. 인도의 한계와 과제 – 오늘날 인도를 만든 교육 산업의 경쟁력과 비결을 엿보고 새로운 움직임을 살펴봅니다. 막 첫걸음을 시작하고 있는 벤처캐피털 이야기도 여기서 할 겁니다. 성장성 뿐만 아니라 한계와 과제를 짚고 넘어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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