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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페미니즘 또는 보수적 여성운동의 비판.

동훈이에게.

지금 쓰는 글은 지난번 내가 썼던 “2년째 계속되는 ‘그 페미니즘’ 논쟁”이라는 글에 올린 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야학 게시판에는 “김규항 살리기?”라는 제목으로 올라갔을 거다. 소모적인 논쟁은 정말 피하고 싶다. 핵심을 짚어서 설명 또는 해명할 테니 부족한 부분은 다시 짚어주기 바란다.

참고 : 여성주의와 진보운동의 연대. (이정환닷컴)
참고 : 2년째 계속되는 ‘그 페미니즘’ 논쟁. (이정환닷컴)
참고 : ‘남성 페미니스트’를 읽다. (이정환닷컴)

너나 나는 생각하는 여성운동의 범주가 다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의 범주에는 진보적인 여성운동도 있고 보수적인 여성운동도 있다. 나는 당연히 여성운동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일상에서 여성 차별의 현실과 부딪히고 있는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 현장이 여성운동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여성운동 단체나 활동가들이 여성운동의 전부가 아니라고 본다는 이야기다.

일단 너의 1번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런 개념들을 왜 내게 묻는 거냐. 2번 질문에서 ‘여성’ 운동과 ‘여성운동’의 구분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건 그냥 말 장난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성운동의 한 전략으로 박근혜 지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박근혜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겠다.

현정은 지지운동을 비롯한 일련의 중산층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의 한 갈래일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다. 3번 질문에 대한 대답도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 진보진영에서 중산층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썼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지지 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너와 나는 다시 의견이 갈린다. 너는 박근혜 지지 운동이 여성운동이 아니라고 보고 김규항이 박근혜 지지운동을 비판하면서 그걸 여성운동의 보수성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는 박근혜 지지운동이 여성운동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건 다시 박근혜 지지 운동이 여성운동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김규항의 공격은 일다를 포함한 여성운동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4번 문제에 대한 답도 됐을 거라고 본다.

5번 질문에서 네 지적은 옳다. “진보적 여성운동이 중산층 페미니즘을 감싸고 도는 모양새다”고 말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보수적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에 진보적 여성운동이 뛰어들어 방어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여성운동 전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보수적 여성운동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이라면 말이다. 지난 글에서 내가 지적한 것처럼 서로 서로 전선이 다르다. 연대할 부분이 있겠지만 서로 싸워야 할 부분도 있다.

물론 여기서도 중산층 페미니즘과 보수적 여성운동이 같은 것인가, 그리고 이들을 여성운동의 한 갈래로 볼 것이냐 하는 부분은 서로 견해가 다르다.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6번 질문은 무슨 말인가 모르겠다. 중산층 페미니즘에 대한 김규항의 비판을 가부장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여성운동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전선이 여성운동과 가부장주의의 전선으로 변질됐다고 나는 본다.

7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5번과 같다. 내 표현에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8번 질문에 핵심이 있다. 내가 쓴 부분을 다시 인용하겠다.

“여성운동의 전선은 일상의 곳곳에 있다. 나는 일다가 여성운동을 대변한다고 보지 않고 마찬가지로 박근혜 연대론이나 현정은 지키기도 여성운동의 한 갈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여성운동의 최전선은 오히려 일상이라고 본다. 김규항이 나름대로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할 것이다. 나는 일상의 최전선에서 실제로 많은 여성과 남성의 의식 가운데 김규항이 비판한 중산층 페미니즘의 논리가 파고 들고 있고 여기서 비롯한 여성운동에 대한 오해도 많다고 생각한다. 비판의 방식에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비판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너와 내가 엇갈리는 부분이 여기다. 다시 정리하면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런 페미니스트들을 인정할 수 있다. 장애인이라서 장애인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고 전라도 사람이라서 전라도 출신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는 것도 마냥 비판할 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일 수도 있다.

나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꽤나 많다고 생각하고 내 일상의 영역에서도 그런 친구들을 여러명 만났다. 유형화할만큼 일반적인 현상인가 모르겠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그런 정서는 꽤나 보편적인 것 같다. 물론 네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고 페미니스트로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최보은이 있고 장정임이 있고 그들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박근헤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는 단 한명도 없고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은 부당하다는 주장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논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의가 소모적으로 흐르는 건 여기서 네가 이 주장을 꺾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논의는 어이없게도 비판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됐다. 그것은 비판의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당연히 모든 비판은 가능하고 비판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논의가 흐트러졌던 것은 여성운동의 범주가 명확하지 않았던데다 김규항이 그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9번과 10번 질문에 대한 대답도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읽은 책에, “페미니즘은 젠더에 기반한 권력이 없어져야 한다는 믿음”이라고 나와 있더라. 중산층 페미니즘이나 보수적 여성운동도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의 한 갈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넓게 보면 보수적 여성운동과 진보적 여성운동이 연대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큰 범주에서 목표도 같다. 그러나 서로 비판할 부분도 분명히 있고 당연히 서로 비판해야 한다. 나는 이 모두를 여성운동의 범주로 본다. 김규항은 여성운동의 보수성, 특히 그가 중산층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움직임을 비판했고 그건 당연히 모든 여성운동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페미니즘과 여성운동, 여성주의가 섞여 있는데 김규항의 원래 단어를 살려서 썼다. 맥락과 차이는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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