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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H의 브릿지증권 약탈 작전 전모.

외국계 투기자본의 국부 유출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더니 멀쩡한 회사가 통째로 넘어가는데도 마냥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정부 당국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수천억원의 자산을 약탈 당할 위기에 놓인 브릿지증권의 경우는 정말 참담하기 짝이 없다. 이 회사 대주주인 BIH, 브릿지 인베스트먼트 라부안 홀딩스는 지난 4월 22일 이 회사의 을지로와 여의도 사옥을 GE부동산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714억1천만원에 이른다. 브릿지증권은 멀쩡한 건물을 팔아넘기고 그 건물에 세를 들어사는 신세가 됐다. 브릿지증권 노조는 외국계 투기 자본이 회사의 자산을 빼돌리려 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야말로 알맹이는 다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게 될 판이다.

곧 망할 회사도 아닌데 이렇게 자산을 내다파는 대주주의 의도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회사 임직원들 조차도 BIH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미국의 위스콘신 연기금과 홍콩의 리젠트 퍼시픽 그룹 등이 세운 페이퍼 컴퍼니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본사는 말레이시아의 조세회피 지역인 라부안에 있다. 5월 15일 현재 BIH가 보유하고 있는 브릿지증권 지분은 전체 주식의 70.9%에 이른다. 주주총회의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19.4%를 포함하면 90.3%, 사실상 회사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사회도 전체 이사 7명 가운데 윌리엄 다니엘 사장을 비롯한 5명이 BIH에서 임명한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를 비롯해 회사의 모든 경영 권한이 결국 BIH의 수중에 놓여있는 셈이다.

BIH의 향후 계획은 이렇다. 먼저 회사의 돈 되는 자산을 모두 팔아 최대한 현금을 늘린다. 그 다음 6월 주주총회를 통해 대규모 무상증자를 실시하고 뒤이어 대규모 유상감자를 실시한다. BIH는 이같은 계획으로 1200억원 이상을 회수할 계획이라고 브릿지증권 노동조합에 통보한 바 있다. BIH는 당당하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금 매각 또는 청산의 수순을 앞두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BIH의 브릿지증권 약탈 작전의 첫출발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잡하지만 제대로 읽는게 좋다. 눈 뜨고도 코를 베이는 세상 아닌가.

1단계 전략, 헐값에 사들이기

BIH의 전신인 코리아 온라인 리미티드, KOL은 1998년 2월 대유증권을 인수한데 이어 2000년 11월 일은증권을 인수한다. 뒤에 대유증권은 리젠트증권으로 이름이 바뀌고 두 회사는 2002년 1월에 합병되면서 다시 브릿지증권으로 이름이 바뀐다.

KOL이 한국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던 1998년은 IMF의 충격으로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던 무렵이었다. KOL이 당시 대유증권의 대주주였던 대유통상 이준영 회장 등으로부터 대유증권 지분을 사들였을때 인수단가는 한주에 8천원, 대유증권의 시가총액은 모두 692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 12월 기준으로 대유증권의 자본총계는 1730억원에 이르렀다.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팔려나간 셈이다. KOL은 1백49억원을 들여 이 회사 지분 21.5%를 사들이고 일약 최대주주로 부상한다. KOL은 그 이듬해 대유통상의 나머지 지분을 모두 사들이면서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다. 이때 들어간 돈은 5백20억원. 이밖에 시장에서 사모은 주식과 유상증자를 포함해도 KOL이 대유증권을 인수하는데 들어간 돈은 1천2백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헐값에 팔려나가기는 일은증권도 마찬가지였다. 제일은행의 자회사였던 일은증권은 예금보험공사에 넘어갔다가 공개입찰을 통해 다시 KOL에 넘어간다. 당시 입찰 가격은 주당 1만6천원, KOL은 1093억원을 들여 일은증권 지분 48.8%를 사들인다. 2000년 12월 기준으로 일은증권의 자본총계는 2677억원, 역시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2002년 리젠트증권과 일은증권의 합병 당시 두 회사의 자본총계는 4842억원, 그러나 KOL이 두 회사를 인수하는데 들어간 투자자금은 모두 2천2백억원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4470억원짜리 회사가 절반도 안되는 2천2백억원에 넘어간 셈이다.

2단계 전략, 대규모 배당

KOL이 대유증권을 인수한 이듬해는 증권시장 사상 최대의 호황이었다. 대유증권은 83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2년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KOL은 2000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한주에 700원씩의 배당을 결의한다. 주식 액면가 1천원 기준으로 70%에 이르는 배당은 전무후무한 최대의 배당 기록이었다. 당시 KOL의 지분은 보통주와 우선주가 각각 42.7%와 46.6%로 KOL이 받은 배당금액은 모두 204억원에 이르렀다. 사실상 초기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을 이때 회수한 셈이다.

지배적인 지분을 확보하면서 KOL은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2001년 3월 KOL은 일은증권 이사회에서 KOL의 자회사에 자금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KOL은 종합금융그룹을 표방하면서 부도위기에 놓여있었던 해동화재와 경수종금 등을 잇따라 인수했으나 경영 정상화에 실패했다. 당시 KOL이 요구했던 자금은 1천2백억원 규모. 일은증권이 KOL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일은증권 또한 도산의 위기에 직면했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당시 일은증권의 홍준기 사장과 이사들은 이들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강력히 반대했고 장장 12시간여의 회의를 거친 끝에 피터 에버링턴 이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보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결국 그해 주주총회에서 일은증권의 경영진은 대폭 물갈이 된다.

KOL은 지난 2000년 진승현 게이트에 깊숙히 개입, 주가 조작 혐의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진 멜론 리젠트그룹 회장은 검찰의 소환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고 결국 KOL에서 손을 털고 나간다. 리젠트그룹의 뒤를 이어 KOL을 넘겨받은 사람은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높은 윌버 로스. IMF 무렵 우리 정부를 상대로 외자 유치를 도와주겠다는 사기를 치면서 수천억원을 챙긴 수치스런 역사의 장본인이다. 윌버 로스의 교묘한 사기 수법은 KOL의 브릿지증권 약탈 작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3단계 전략, 자사주 매입과 소각, 대주주 지분 늘리기

경영권을 장악한 뒤 KOL은 본격적으로 지분 늘리기에 나선다. 지분 늘리기의 대표적인 전략은 자사주의 매입과 소각이다. 돈을 주고 주식을 사는게 아니라 회사의 자산을 빼돌려 대주주의 지분을 늘리는 교묘한 수법이다.

일은증권은 2001년 한해 동안 46만주, 모두 28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리젠트증권과 합병 때도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두 회사 주식을 모두 167억원어치 사들였다. 리젠트증권과 일은증권의 합병으로 탄생한 브릿지증권은 이렇게 사들인 주식을 지난해 7월 모두 소각한다.

자사주를 소각한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불에 태우는게 아니라 장부에서 사라진 것으로 처리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주식이 사라지는만큼 남아있는 주식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이를테면 전체 주식 1만주 가운데 당신이 5천주를 갖고 있을 때 회사가 자사주 2천주를 사들여 소각하면 전체 주식은 8천주로 줄어들고 당신의 지분 비율은 50%에서 62.5%로 늘어난다.

회사 자산을 쏟아부어 자사주를 사들인 다음 사들인 그 자사주를 소각하면 그만큼 대주주의 지분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난다. 사실상 공짜로 주식을 더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자사주 소각으로 브릿지증권의 자본금은 1천24억원에서 8백7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그 줄어든 자본금의 상당 부분은 대주주의 몫이 됐다. BIH의 지분 비율은 놀라지 마시라, 2002년 49.7%에서 2004년 5월 현재 70.9%까지 늘어났다. 5월 12일 종가 27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388억원어치의 지분이 늘어난 셈이다. 믿기지 않지만 이 모든게 완벽하게 공짜다.

4단계 전략, 유상감자

BIH의 전략은 유상감자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다.

감자는 증자의 반대말이다. 자본금이 줄어들면서 회사의 규모도 그만큼 줄어든다. 감자는 무상감자와 유상감자로 나뉘는데 무상감자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주주들이 손해를 보고 그만큼 회사의 재무구조는 좋아진다. 이를테면 2 대 1로 무상감자를 하면 주식 2주가 1주로 줄어들고 회계장부의 자본금도 같은 비율로 줄어든다. 자산은 그대론데 회사의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규모에 비해 자산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유상감자는 정반대다. 자본금을 줄이되, 그만큼 주주들이 자산을 나눠갖는다. 주주 입장에서 볼 때 2 대 1로 유상감자를 하면 주식은 절반으로 줄어들지만 그만큼 회사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 무상감자는 자본금이 회계장부에서 줄어들뿐이지만 유상감자는 줄어든 자본금만큼 실제로 자산이 빠져 나가 주주들에게 흘러 들어간다.

브릿지증권은 합병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세차례에 걸쳐 유상감자를 실시했다. 결국 합병 당시 1천1백64억원에 이르렀던 자본금은 절반 남짓한 688억원으로 줄어들었고 그 돈은 모두 주주들이 나눠가졌다.

시장의 비난을 의식한듯 BIH는 2002년 한때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상장이 폐지되면 브릿지증권의 주식은 더이상 증권거래소에서 사고 팔 수 없게 된다. 대신 증권거래소의 까다로운 규정을 만족시킬 필요도 없고 중요한 경영사항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사실상 대주주가 마음놓고 회사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셈이다.

당시 BIH의 음모는 노조와 소액주주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지만 최근 거래량 부족으로 또 다시 상장 폐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주주와 자사주의 지분이 90%가 넘어 거래량이 증권거래소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브릿지증권 직원들은 우리사주조합을 결성, 지분을 사모으면서 거래량을 늘려 상장폐지를 막아낸 바 있다.

5단계 전략, 자산 매각

올해 들어 BIH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을지로와 여의도 사옥을 내다판 것이 시작이다. 매각 대금은 714억1천만원에 이른다. 브릿지증권은 멀쩡한 건물을 팔아넘기고 그 건물에 세를 들어사는 신세가 됐다. 이유가 뭘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상쩍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BIH는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사옥을 매각했다. 을지로 사옥의 감정가격은 540억원, 여의도 사옥의 감정가격은 230억원으로 모두 770억원 규모다. 부동산의 시세가 감정가격보다 20% 이상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세보다 수백억원 이상 싸게 팔린 셈이다. 사옥은 GE캐피털의 100% 출자법인인 GE부동산에게 팔려나갔다.

게다가 BIH는 공개입찰의 관행을 무시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사옥을 매각했다. BIH는 지난 2002년에 공개입찰 방식을 통해 브릿지증권 송파 사옥을 감정가보다 25%나 높은 가격에 매각된 바 있다. 왜 이번에는 공개입찰을 실시하지 않았을까.

브릿지증권 노조는 뒷거래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임대료를 터무니 없이 높게 지급하고 있다는게 그 근거다. 노조에 따르면 브릿지증권은 사옥 매각 이후 기존보다 30% 이상 높은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다. 멀쩡한 사옥을 헐값에 내다 팔고 그 사옥에 터무니 없이 비싼 임대료를 주고 세를 들어산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황준영 노조 위원장은 자산을 빼돌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증권회사는 자본금이 최소 500억원 이상이 돼야 한다. 브릿지증권의 자본금은 여러차례의 자사주 소각과 유상감자로 이미 688억원까지 줄어든 상태다. 더이상 빼내갈 자본금이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이번에 건물을 매각한 것은 고정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만들고 자본금을 늘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BIH는 회사에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이대로 가면 회사는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더이상의 자본 유출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조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비정규직 직원이 많고 그나마 노조 가입율도 낮아 파업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우리사주조합이 1% 가량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만 90%가 넘는 막강한 지분으로 버티고 있는 대주주에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노조는 5월 9일 다니엘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6단계 전략, 무상증자와 유상감자

지난 4월 4일 BIH는 브릿지증권 노조에 앞으로의 자금 회수 계획을 알려왔다. 브릿지증권의 사장을 비롯한 모든 경영진은 철저하게 BIH의 지시를 받는다. 사실상 허수아비 경영진인 셈이다. 노조와 협상하는 일도 사장이 아니라 BIH가 직접한다.

BIH의 계획은 이렇다. 먼저 무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린 다음 유상감자를 통해 그 자본금을 빼내간다. BIH의 이번 목표는 1천2백억원이다. 1천2백억원을 가져갈 수 있도록 노조가 도와준다면 올해 11월까지는 자본금을 빼내가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BIH는 이번 협상에서 상장폐지와 매각을 공공연히 거론했다. 시키는대로 따라오라는 사실상의 협박이기도 했다.
BIH는 5월 30일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오는 6월 15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무상증자와 유상감자 안건의 상정될 전망이다. 주주총회의 표 대결에서 노조가 이길 확률은 전혀 없다.

증자는 유상증자와 무상증자로 나뉜다. 유상증자는 새로 주식을 만들고 주주들에게 팔아 자본금을 늘린다는 말이고 무상증자는 회사의 자산을 자본금으로 돌린다는 말이다. 자산이 줄어드는만큼 자본금은 늘어난다. BIH는 이번에 사옥을 팔아 만든 현금 자산을 무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으로 돌릴 계획이다. 자본금을 빼내가기 위한 사전 단계다. 자본금이 부족하면 자본금을 늘려서 빼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브릿지증권의 자본금은 6백88억원, 만약 100% 무상증자를 하면 자본금은 1천3백76억원으로 늘어난다. 1천2백억원을 빼내가기 위해서는 증자 비율이 더 커질 수도 있다. 200% 무상증자를 할 경우 자본금은 2천64억원으로 늘어난다. 무상증자에 성공하면 BIH는 또 다시 대규모 유상감자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 경우 최소 자본금 5백억원을 남겨두고도 1천5백억원 이상을 빼내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7단계 전략, 상장폐지와 매각 또는 청산

지난해 말 기준으로 브릿지증권의 자본총계는 3천6백68억원에 이른다. 반면 발행 주식 전체를 합한 시가총액은 1천8백34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주가는 낮지만 자산이 굉장히 많은 알짜배기 회사라는 이야기다. BIH 입장에서는 그만큼 빼내갈 자산이 아직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빼내갈만큼 자산을 빼내가고 나면 다음 수순은 매각 또는 청산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증권회사 인수 의사를 밝힌 농협에 매각되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노조에서는 최악의 경우 BIH가 회사를 청산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장 회사를 청산해도 BIH는 3천억원 이상을 챙길 수 있다. BIH는 이미 회사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여러차례 증명된 바 있다.

상장 폐지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증권거래소는 월 평균 거래량이 전체 주식의 1% 이하거나 소액 주주의 지분 비율이 10% 미만일 경우 상장을 폐지한다. 지난해 우리사주조합의 도움으로 거래량을 늘려 상장 폐지를 막기는 했지만 6월 30일까지 소액 주주의 지분 비율을 늘리지 못할 경우 브릿지증권은 결국 상장 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BIH 입장에서는 상장이 폐지되면 마음놓고 매각을 하든 청산을 하든 할 수 있는 셈이다. 한때 자진 상장폐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만큼 이렇게 자동적으로 상장 폐지 되는 상황이 BIH에게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될 수도 있다.

노조는 상장폐지나 청산을 막기 위해 사생 결단의 태도로 맞서고 있고 BIH는 이를 담보로 1천2백억원의 자금 회수 계획을 관철시킬 계획이다.

돌아보면 브릿지증권은 외국계 투기 자본의 손을 타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자본총계는 4천4백78억원에서 3천6백68억원으로 줄었고 앞으로 1천2백억원이 더 빠져나갈 전망이다.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는 셈이다. 전국에 깔려 있던 지점은 39개에서 29개로 줄었고 직원수도 8백14명에서 6백20명으로 줄었다.

투기자본의 도덕성도 문제다. BIH가 과거 자회사였던 리젠트종금 등의 부실 책임과 관련, 부실 금융기관 대주주로 지정되면서 브릿지증권까지 그 덤터기를 쓰게 됐다. 랩 어카운트 장외 파생상품이나 자산운용사 설립 등 금융감독원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규 사업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또 BIH가 2백억원의 책임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자칫하면 증권업 허가까지 취소될 위기에 놓여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BIH는 회사의 생존을 위한 2백억원은 내지 않으면서도 투자금의 회수를 위해 1천2백억원을 빼내 가겠다고 우기고 있다.

완벽하게 합법… 막을 방법 없어

BIH의 브릿지증권 약탈 작전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투기자본의 실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놀라운 것은 BIH의 브릿지증권 약탈 작전의 이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합법이라는 사실이다.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브릿지증권 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태는 숱하게 많다. 만도의 대주주 JP모건은 지난해 12월 자사주 소각과 유상감자를 통해 5백14억원을 빼내갔다. JP모건은 이미 투자비용의 두배 이상을 챙겼다. 지난 3월에는 OB맥주의 대주주 인터브루가 역시 유상감자를 통해 무려 1천6백억원을 빼내가기도 했다. 유상감자 한번에 전체 자본금의 60% 이상이 빠져 나갔다.

이에 앞서 2002년 5월 서울증권의 대주주인 퀀텀인터내셔널펀드는 액면가 대비 60%의 배당을 결의, 2백67억원을 챙긴 바 있다. 이 회사는 배당 결의가 발표되면서 주가가 급등하자 재빨리 보유지분을 팔아치우는 순발력도 돋보였다.

메리츠증권은 더욱 기가 막힌다. 이 회사는 최근 한주에 700원씩 배당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배당총액은 2백35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회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백13억원밖에 안됐다는데 있다. 벌어들인 것보다 두배 이상을 배당으로 빼내가는 셈이다. 심지어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전년도 당기순이익의 15배를 배당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대주주인 파마그룹의 몫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렇게 엄청난 이익을 챙기면서도 이들 외국 자본은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우리나라에는 세금 한푼 물지 않는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 당국에서는 유상감자나 투기자본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 조사조차도 없다. 외국의 사례는 어떤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도 전혀 없다. 금융감독위원회 증권감독과 배준수 사무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이번 브릿지증권 사태를 전담하고 있다.

“국수주의적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외국 자본은 다 악이고 국내 자본은 선이다, 이런 시각 문제 있습니다. 외자 유치 해달라고 난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투기 자본을 문제 삼습니까. 문제는 많지만 막말로 그놈들 하나 빠져 나간다고 해도 전체 시장에 별 영향은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기회에 증권사 구조조정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한심한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브릿지증권의 경우는 명백한 자산 약탈이고 심각한 국부 유출이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다른 대책은 없나.

“투자자가 기업의 가치를 올려서 이익을 남기고 팔고 나가는 것은 당연하죠. 고민은 하고 있는데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요. 규제를 한다고 합시다. 무슨 기준을 두고 어떻게 규제할 겁니까. 그러다가 외국 자본 다 빠져 나가면 어떻게 합니까.”

결국 외국 자본을 다 내쫓을 수는 없는 일이고 투자한만큼 이익을 챙기려는 건 자본의 속성이니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찬근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이런 시각에 강력히 반대한다.

“유상감자를 통한 자본 유출을 막는 입법 장치가 필요합니다. 유상감자를 금융당국의 인허가 사항으로 만들면 됩니다. 긴급한 상황일 경우에만 유상감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최근 몇년 사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실시한 기업에 대해서는 유상감자를 금지시킨다거나 하는 입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 교수는 국내에 들어온 외국 자본의 95%가 단기 투자 이익을 노린 투기자본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 투기자본은 투자금의 회수와 이익 실현에 매달릴뿐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들은 기업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외부화시키고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하는 경우도 많다.

IMF 이후 외국계 투기자본의 투자 성적표를 살펴보면 국부 유출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가늠할 수 있다.

독일의 알리안츠 그룹은 하나은행에 1천2백63억원을 투자해 3천억원 가까이 벌어들였다. 칼라일 그룹도 한미은행에 4천9백억원을 투자해 6천2백억원을 벌어들였다. 칼라일 그룹은 BIH처럼 말레이시아의 라부안에 본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어느 나라에도 세금 한푼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국민은행에 투자해 원금의 두배가 넘는 9천2백억원을 벌어들였고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해 8천억원을 벌어들였다. 뉴브릿지캐피털은 단돈 5천억원에 제일은행을 인수하고 정부에서 18조원의 공적 자금을 받아냈다. 뉴브릿지캐피털의 투자 이익은 1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 교수는 펀드에게 금융기관의 대주주 자격을 부여하지 말 것, 악성 투기자본의 국내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킬 것, 감독기관을 구성해 외국 자본의 경영상태를 꾸준히 점검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밖에 외환거래세나 주식거래세,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스톡옵션의 행사를 제한해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 나눠먹기 고리를 끊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노조의 경영참여를 보장,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자유화 시대에 이 교수의 이런 지적은 언뜻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시장의 원리는 냉혹하고 정부 당국은 이를 거스를 의지도 힘도 없다.

누가 회사의 주인인가. 이들은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주인은 회사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회사야 껍데기가 되든 말든 회사를 팔아치워서라도 주인은 이익을 챙긴다. 주주 자본주의의 실상은 이렇게 참담하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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