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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은 어디까지 보도할 수 있나.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아무개 신문사 사장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 신문사는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자기네 사장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이 의원의 발언을 보도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의원에게도 공문을 보내 면책 특권 남용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이 이 의원의 발언이나 이 신문사의 해명을 인용해 이 신문사의 이름을 공개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른 대부분 언론은 여전히 이 신문사의 이름을 익명 처리하고 있다. 명예훼손 소송이 두려워서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장자연 리스트는 여전히 의혹일 뿐 검증된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발언으로 달라진 게 있나? 없다. 오히려 이 의원에 묻어가면서 실명을 까발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는 연쇄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포된 미네르바의 실명을 공개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자연 리스트를 다룰 때도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론이 완벽하게 검증된 사실만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충분한 의혹이 제기됐고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그리고 그 사람이 공적 인물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이를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고 의무다. 그러나 장자연 리스트를 실제로 본 기자는 손에 꼽을만큼 적고 이 인물의 관련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이 의원 역시 떠도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만약 문제의 인물이 리스트에 없거나 리스트에 있더라도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이를 인용해 보도한 언론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감수해야 한다. 블로거들 역시 마찬가지다. 걸면 모두 걸린다. 문제는 명예훼손이나 손해배상이 아니라 과연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할 수도 없는 의혹을 어떻게 보도할 것이냐다.

실명을 공개한 언론사들이 대단한 용기를 보였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공개하지 않은 언론사들이 엄격히 취재윤리를 고려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추측 보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고 국회의원의 말을 인용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확신할 수 없는 의혹을 기사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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