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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를 생각함, 첫번째.

“나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할, 말도 안되는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법에 따라 처벌을 받으려고 들어왔다. 왜냐고? 이 나라를 너무 사랑하고 그래서 이 나라에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송 교수가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다. 그렇게 정면으로 부딪힐 때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먼저 송 교수에게 안타까운 것은 왜 좀더 당당하지 못했느냐는 거다. 북한에 몇번 다녀왔으면 어떻고 또 설령 북한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였으면 어떤가. 부끄러울 일이 아니라면 숨김없이 털어놓고 당당하게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두려웠으면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 눌러살았으면 될 것 아닌가.

떳떳하게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면 왜 이제와서 과거를 부정하는가. 무슨 영화를 얼마나 보겠다고! 그렇게라도 돌아오고 싶었단 말인가.

한나라당 박주천 사무총장은 “위장 입국”이니 “분단 이후 최대의 간첩 사건”이니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최병렬 대표도 나서서 “송 교수를 어물쩍 풀어주려고 했던 국정원장은 사퇴하고 송 교수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던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장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교수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던 KBS 정연주 사장은 송 교수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국정감사에서 된통 혼쭐이 났다. 한나라당 애들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공범이다.

일부 언론은 맞장구를 쳐서 송 교수가 사실은 시간 강사였을뿐 교수도 아니었다고 무슨 커다란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떠들어 댔다. 세계적인 학자기는커녕 월급도 얼마 못받고 북한에서 생활비까지 타서 쓰는 처지였다는 이야기다. 너 같은 게 무슨 교수냐는 빈정거림도 섞여 있었다. 송 교수는 그렇게 처참하게 물어뜯기고 있다.

송 교수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철저하게 “경계인”으로 살겠으니 추방하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나는 송 교수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동안 꿋꿋하게 신념을 지키면서 싸워왔다고 믿고 있다. 그의 생각과 주장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떠나서 나는 그를 존중하고 어느정도 존경했다. 그래서 그가 무너지는 걸 지켜보는 심정은 이렇게 씁쓸하고 참담하다.

검찰은 정치권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흐르는 걸 보고 송 교수를 사법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10월3일 개천절 아침, 송 교수는 서울지검에 출두해 조사를 받기로 했다. 송 교수를 초청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불똥이 튈까 무서워 심포지엄 등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사과 성명까지 발표하는 헤프닝을 빚었다. 마녀 사냥의 와중에 송 교수의 편은 거의 없다. 이래저래 37년만에 돌아온 송 교수는 지금 몹시 외롭다.

새삼스럽게 놀라운 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반공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런 케케묵은 논리가 아직도 먹혀드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24일 서울지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은 미군부대에 침입해 성조기를 불태운 한총련 학생들 이야기를 하면서 “우방국 국기를 모독하는 불법 행사를 경찰이 방치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 그가 최근 잇따른 보수단체의 집회와 관련해서는 “인공기를 불태우는 애국적 행사에 경찰이 뛰어들어 난동을 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조기를 불태우면 우방국 국기를 모독하는 게 되고 인공기를 불태우면 애국 행위가 된다는 논리다.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앉아있다니 정말 한심한 일 아닌가.

핵심은 결국 송 교수가 이적(利敵)행위를 했는가의 여부다. 북한이 적인가. 북한이 반국가단체인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을 다녀왔다는 것만으로 이적행위가 성립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 북한에 건너가 주석을 만나고 기업들이 앞다투어 대북 경제교류 협력에 나서는 세상이다. 이적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무의미한 상황에서 송 교수를 둘러싼 우리 사회 일련의 반응은 시간을 한 10년쯤 거슬러 올라간 듯 혼란스럽다. 꽤나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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