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내주고 방송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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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를 내주고 일단 방송을 지켰다. 언론 관련법 처리가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여야가 1일 자정을 넘기면서 막바지 협상을 벌인 끝에 내린 결론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합의가 안 되면 직권 상정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원혜영 민주당 원내 대표 등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여야는 방송법 등 여야 입장 차이가 큰 언론법들은 향후 4개월 동안 논의를 거친 뒤 국회법에 따라 처리하기로 하는 대신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등 경제 관련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극단적인 충돌은 피하고 이른바 조중동 방송을 일단 막긴 했지만 이를 위해 파격적인 양보를 한 셈이다.

국회에서 지루한 공방을 벌이는 동안 미국에서는 씨티그룹을 국유화하는 극단적인 위기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달 26일 미국 정부는 250억달러 규모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미국 정부의 지분은 36%까지 불어났다. 매입 가격은 3.25달러. 27일 주가 1.5달러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문제는 국유화를 한다고 해도 당장 씨티그룹이 살아날 가망이 별로 없는데다 자칫 밑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정부 재정을 고갈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씨티그룹의 시가총액이 82억달러인데 미국 정부는 이미 이 3배를 쏟아부었고 앞으로도 얼마를 더 쏟아 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주목할 부분은 왜 미국이 국유화라는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극약 처방을 선택했느냐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주식 투자자들의 불안을 염려해 국유화 가능성을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그러나 씨티그룹의 파산이 기정사실화하고 금융부실과 신용경색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상황을 마냥 방치할 수 없게 됐다.

미국에는 1500개의 은행이 있는데 올해 들어 14개, 지난해부터 하면 40개가 파산했다. 올해 안에 100개 정도 은행이 추가로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들 은행을 모두 정상화하려면 1조4천억달러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 돈은 모두 미국 정부가 대야 하고 결국 국민들의 부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 등은 모든 은행들의 전면적 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미 망한 좀비 은행들에 세금을 대책 없이 쏟아 부을 게 아니라 정부가 아예 몰수해서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씨티그룹의 국유화를 보는 우리 언론의 입장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금융권의 상황이 다른 대안을 찾기에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갔다”면서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국유화하더라도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투자자와 납세자의 부담은 가중될 것”이라고 전했다.

짚고 넘어갈 대목은 우리나라도 국유화를 논의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부가 은행의 자본확충을 전격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금을 쏟아 부어 주주들을 돕기 보다는 정부가 지분을 확보하고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언론은 한 군데도 없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은행들은 신속히 필요한 자본을 확충, 자금공급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면서 “정부 역시 펀드 자금을 신속히 집행, 돈맥경화를 속히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국민들 세금으로 은행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부의 간섭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조선일보 기고에서 “(국유화가)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떨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손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국유화가 되더라도 은행의 경영은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한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에 실린 차현진 한국은행 조사국 부국장의 기고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준다. 차 부국장은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하면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려면 국유화보다는 자본확충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있다”면서 “정부가 자금은 투입하돼 경영권은 보장해 줌으로써 민간 기업의 성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 부국장은 “이 방법은 납세자 세금이 기존 주주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정부가 자본확충을 서두르고 있지만 국내 언론 가운데 납세자들의 권리를 문제삼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정부 간섭을 배제할 것을 요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도 상당수 언론이 침묵하고 있다. 이 두 법은 애초에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기획됐다. 특히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의 처리 문제가 금산분리 논의의 출발이었다. 금산분리 완화가 국회를 통과하면 금융 계열사들의 자산을 동원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일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게 된다.

금산분리 완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당장 우리은행이나 외환은행 등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국내 자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핵심은 국내냐 해외냐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자본에 은행의 지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데 있다. 은행이 사고 팔 수 있는 영리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그리고 10년 전 우리 외환위기 경험에서 보듯 은행이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그 부담을 국민들 전부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은행을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사고 파는 일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규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유화라는 극단적인 사태까지 가지 않으려면 은행을 사회적인 통제와 감시 아래 둘 필요가 있다.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국면에서 씨티그룹의 국유화나 국내 은행들의 자본확충, 그리고 금산분리 완화 등에 대한 언론의 어정쩡한 태도는 여전히 자본주의와 시장의 원리는 절대 불가침의 영역이고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돼야 한다는 도그마 때문이다. 금융 공공성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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