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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과 공적자금의 딜레마.

경제개혁연대가 며칠 전 좀 이상한 성명을 냈다. 최근 은행 자금 지원과 관련, 정부가 유사 공적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느니 관치금융을 해서는 안 된다느니 등등. 언뜻 읽어서는 정부가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도 하고. 은행의 경영 실패와 감독당국의 감독 실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면서도 관치금융은 안 된다?


참고 : 부실채권 정리는 공적자금, 은행 자본확충은 관치금융? 외환위기 때의 교훈 벌써 잊었나? (경제개혁연대)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더니 핵심은 구조조정기금이나 자본확충펀드 같은 유사 공적자금이 아니라 국회 의결을 제대로 거쳐서 공식적으로 공적자금을 조성해 집행하고 책임있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오해를 했던 건 ‘관치금융’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는데 금융위원회 진동수 위원장이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놓고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윽박지른 것 등을 두고 한 말이었다고 한다.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을 정리하면 첫째, 은행에 국민들 혈세를 쏟아 부으려면 그만큼 권리도 행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경영 실패의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정부가 은행의 경영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면 어설프게 권력으로 개입하지 말고 주주가 되거나 채권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용어를 다시 정리하자면 권력의 시장 개입을 관치금융이라고 하고 주주나 채권자가 돼서 권리를 행사하는 걸 공적자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외채 지급 보증을 해주거나 통화 스와프를 끌어다가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나서면서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압력을 넣는 것 등이 관치금융이라는 이야기다. 경제개혁연대도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정부 관료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시장과 자본의 원리를 따르되 국회 보고나 감사원 감사 등 감시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관치금융에 대한 반발은 정부 주도로 특정 기업에 대출을 늘려 부실을 키웠던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관치가 시작되는 순간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발을 빼고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할까. 경제개혁연대는 관치금융은 안 된다면서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위해 과감하고 선제적인 공적자금 투입을 주문한다.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정부 차원의 해법을 요구하는 이런 모순은 경제개혁연대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한다. 합리적인 시장경제를 꿈꾸는 이들이 관치금융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 결국 최후의 보루는 정부 권력의 개입, 관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애초의 부실의 원인이 과도한 규제완화와 관리 감독의 부재, 곧 관치의 부재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문제는 관치의 주체가 이명박 정부라는 건데 진보진영이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다. 관치는 필요하지만 이명박에게 맡겨 두기에는 위험하다는 이야기인데 정부가 배제되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된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살아남는 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독점 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금융을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맡겨둬서 안 된다는 교훈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관치금융으로 회귀? 좀 더 나가서 국유화? 정부를 믿을 수 있나. 관치금융이든 공적자금이든 정부는 결국 자본의 이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금융 공공성의 확보와 사회적 통제가 근본적인 해답이 되겠지만 원론적이고 모호하고 또 요원한 일이다. 금산분리 완화니 자본시장통합법이니 하는 시대에 말이다.

참고 : Catch-22. (fo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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