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jeonghwan.com

‘잡 셰어링’이라는 거대한 음모.

언젠가부터 언론이 일자리 나누기, 이른바 잡 셰어링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해서 고통을 분담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다.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는 정부도 공기업이 솔선수범해서 일자리 나누기에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116개 공기업의 대졸 초임을 평균 14% 정도 깎아 연봉 2500만 원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19일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열린 8차 비상 대책회의의 결과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그렇게 확보된 재원으로 연간 600여명의 인턴 사원을 추가로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언론은 애초에 일자리 나누기의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을 깎아서 남는 돈으로 신규 채용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여서 고용을 유지하거나 신규 채용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런데 그 차이를 이야기하는 언론은 한군데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임금을 깎는다고 해도 없던 일자리가 당장 생겨나지는 않는다. 인턴을 600명 채용한다고 하지만 이들이 들어와도 할 일이 없다. 10명이 할 일을 11명이 나눠서 하게 되는 셈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라면 세계 최장인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하루 10시간 일하던 걸 8시간으로 줄이면 2명을 더 뽑을 수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당장 인건비를 줄여 보겠다고 너도나도 임금부터 깎고 나면 내수 기반을 무너뜨려 경제 위기를 더욱 가속화·장기화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수록 노동시간을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재고해야 한다. 그게 일자리 나누기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거꾸로다. 정부는 임금을 깎는 기업들에게 자금 지원을 하고 세제 혜택까지 줄 계획이다. 일자리 나누기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정부가 나서서 임금 삭감을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일자리를 지키려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노골적인 협박까지 불사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이윤호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잡 셰어링 사업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 차원의 국민운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임금을 삭감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단순한 도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에는 애초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언론은 공기업 초임을 깎겠다는 정부 방침과 관련, “공기업 임금 삭감에 기존 직원도 포함시켜야 한다(파이낸셜뉴스)”거나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도 초임을 깎아야 한다(매일경제)”면서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 나누기를 거들고 나섰다. 기업들 45%가 임금 삭감이 전제된다면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겠다는 상공회의소 설문 결과도 비중있게 인용됐다.

대부분 언론이 “임금 구조조정을 받아들여 고통을 분담하면서 일자리를 지키고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한국경제)”는 논리를 펴면서도 기업 유보금이 충분하고 여전히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들까지 굳이 임금 삭감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열렸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분에 상응하는 임금손실분을 노사정이 3분의 1씩 분담할 경우 고용효과가 사업장 수준을 넘어 업종과 산업, 더 나아가 전사회적인 추가고용창출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정책의 초점이 임금 감축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에 맞춰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는 “정부 주도의 임금 삭감형 일자리 나누기와는 차별화된 노조 주도의 일자리 나누기의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현대자동차가 주간연속 2교대 시행이라는 선구적 사례를 만들고 산별·지역 차원에서 실직 조합원들을 책임지는 사회통합적 고용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경우 1% 노동시간 단축이 3.7%까지 생산성 증대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도 있었다. 노동시간 단축과 추가 고용 부담에 따른 비용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그 효과는 이를 흡수하거나 상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위원은 “이 비용은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재화를 창출하는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언론이 독일 폭스바겐을 일자리 나누기의 성공사례로 들고 있지만 폭스바겐의 경우 노동시간을 주 37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면서 대량 해고를 피한 경우라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폭스바겐은 생산량이 급감하자 일시적으로 주 4일제, 28시간 근무를 도입하면서 임금 감축 부분을 상여금을 지급해 보전해주기도 했다.

정부와 언론이 밀어붙이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 삭감만 있을 뿐 일자리 창출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이 없다. 만약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있다면 임금 삭감 보다는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좀 더 적극적인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주 40시간 근무만 지켜져도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www.leejeonghwan.com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