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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고 하면 그냥 나가야 하나.

당신이 어떤 낡은 건물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보라. 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면 돈을 꽤나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여기 살던 사람들이 못 나가겠다고 버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계약기간이 남아있다면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임대차 보호법에 따르면 주택의 경우는 최초 2년, 상가의 경우는 5년까지 세입자의 권리가 보호된다. 강제로 내보낼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그 뒤로는 계약을 어떻게 갱신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따로 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각각 2년과 5년 단위로 자동 연장된다. 보통은 이런 경우 이사 비용과 중개 수수료 정도를 주고 합의하면 된다. 합의가 안 되면 계약기간을 채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계약기간 만료 6개월 전에 통보를 하고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법적 절차를 밟아 명도소송을 내서 승소하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법원의 집달관을 대동하고 와서 강제로 끌어낼 수 있게 된다. 월세가 3개월 이상 밀리는 경우도 명도소송 대상이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들은 법적으로 보호 받기가 어렵다.

이번 용산 철거민 강제 진압 참사도 이런 경우다. 이 지역은 2006년 4월에 재개발 사업 구역 지정을 받아 지난해 7월부터 이주와 철거가 시작됐다. 세입자 890명 가운데 763명이 보상을 받고 떠났고 나머지 127명이 남아서 보상 규모를 놓고 마찰을 빚어 왔다. 재개발 조합에서 이들에게 제시한 보상금은 주택의 경우 주거 이전비 4개월치, 상가의 경우 휴업 보상비 3개월치인데 이들은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

철거민들의 사정도 들어보면 딱하다. 보상금이 턱없이 적어 당장 이 동네를 뜨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특히 수천만원의 권리금까지 얹어주고 들어왔던 상가들은 달랑 전세 보증금에 휴업 보상비 3개월치로는 서울 어디에 가도 같은 장사를 할 수 없다. 재개발 때문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됐으니 조합이 이를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들의 주장은 지극히 정당하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당신이 건물 주인이라면 어떨까. 당장 새 건물을 짓는 데만 해도 상당한 돈이 들어갈 텐데 도대체 보상금을 얼마나 더 올려줘야 한단 말인가. 그냥 눈 딱 감고 법대로 처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경찰은 건물 주인의 편이다. 철거민들이 불법으로 건물을 점거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철거민들은 결국 목숨을 걸고 맞설 수밖에 없다. 사실 이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철거민들이 준법 질서를 지키는 것? 그래서 나가라고 하면 일단 길바닥에 나앉는 것? 아니면 건물 주인의 온정과 선의에 마냥 의존하는 것? 그래서 단 돈 100만원이라도 더 얹어주길 기대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무분별한 재건축·재개발을 전면 규제하는 것? 그렇다고 낡아빠진 건물을 허물지 못하도록 할 수 있나? 그 어느 것도 본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헌법 35조 3항에는 “국가는 주택개발정책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국민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가의 의무다. 철거민들이 조합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은 쫓겨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재개발 임대 주택을 늘려야 하고 동시에 임대차 보호법을 강화해서 실질적인 보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개발이익을 최대한 환수해 부동산 가격 거품을 빼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투기적 수요를 뿌리 뽑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을 재편하되 공공부문 주택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

(기아자동차 사보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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