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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돼야 부자라고 할 수 있지.

김진태의 ‘시민쾌걸’이라는 만화에 조만장자 마이더스라는 사람이 나온다.


“길을 가다가 1억원짜리 수표를 발견했을 때는 그냥 지나가는 게 돈을 버는 거다”라고 말할 정도의 부자다. 빌 게이츠 보다 1천배 정도 더 부자라는 소문도 있다. 그의 충직한 집사는 월급이 100억원. 마이더스의 집은 마당이 너무 넓어서 좀 도둑들이 길을 잃고 조난 당하는 일도 많다. 앞마당에는 사막과 밀림이 있고 뒷마당에는 바다가 있고 항공모함도 떠 있다.

스위스 은행 계좌에만 1경달러가 있다는데 지난해 기준으로 빌 게이츠 재산이 580억달러니까 이것만 해도 빌 게이츠 전 재산의 17만배나 된다. 마이더스는 애완동물인 펭귄 펭돌이가 사라졌을 때 현상금으로 1조원을 걸기도 했다. 현금과 온갖 유가증권, 부동산 등을 포함하면 빌 게이츠보다 100만배 정도 부자일 거라는 추산도 나왔다.

당신이 혹시라도 마이더스의 집에 초청을 받는다면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언젠가 귀신을 쫓겠다고 수맥연구가와 역술인들을 잔뜩 부른 적이 있었는데 1층을 도는데만 두달이 걸렸을 정도다. 이 집에는 가정부만 5만명쯤 되는데 이들도 가끔 길을 잃는다고 한다.

언젠가 마이더스에게 군대를 나왔냐고 물으니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더란다. 왜냐, 마이더스는 사실 현역 군인이기 때문이다. 마이더스의 집안에는 군대가 있어서 종신 복무하는 전통이 있다. 군대의 이름은 골드아미, 마이더스는 세계 유일의 칠성장군이다. 스텔스 전투기가 2만5천대, 항공모함이 1만8천척, 탱크가 302만9천대. 규모가 대략 짐작이 되는가.

아무리 써도 돈이 늘어나기만 하는 마이더스에게는 돈이 그냥 공기와 같아서 돈을 쓴다는 게 딱히 별다른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 가난한 빌 게이츠를 놀려 먹거나 항공모함에서 골프를 치면서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부자라는 걸 다시 확인하는 일이 마이더스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친구도 없어서 펭돌이와 노는 게 유일한 취미다.

그런 마이더스가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를 봤다면 “서민이네 서민이야”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만화와 드라마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꽃보다 남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부자는 시각적 한계가 분명하다. 카메라는 상상 이상의 허풍을 포장하기에는 너무 솔직해서 우리들의 평범한 현실과 일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구준표가 금잔디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예쁜 옷을 입혀서 파티에 데려 가거나 전자제품 따위를 선물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남들 다 교복을 입을 때 혼자 사복을 입고 으스대고 헬기를 타고 학교에 오기도 하지만 구준표는 마이더스만큼 부자가 아니라 어디 뉴칼레도니아 같은데로 날아가지 않으면 여자친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환상은 현실을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구준표는 그냥 우리보다 돈이 좀 더 많을 뿐이다. 부족한 걸 모르고 살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뭔가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부자가 아니라 최고의 부자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이를 테면 욕망의 상한에는 턱 없이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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