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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미국, 국채 가격 치솟는 이유는.

미국이 망해 간다는데 미국 국채에 돈이 몰려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3개월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0.03%을 기록했는데 이는 1929년 미국이 국채 발행을 시작한 이래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심지어 미국 국채의 발행 금리가 0%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상황이다.


채권 수익률이 낮다는 말은 만기까지 보유해봐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거나 심지어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국채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가격이 뛰어오르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국채 버블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가 불티나게 팔리고 발행 금리가 낮아지면 자금 조달이 쉬워져 공적 자금 투입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화를 찍어내기라도 해야 할 상황인데 지금처럼 국채 수요가 넘쳐나면 국채를 발행해 해결하면 된다. 최근에는 단기 국채는 물론이고 10년 이상 장기 국채 금리도 하락하는 추세다.

알쏭달쏭한 상황이지만 미국 국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잘 나가던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빅 쓰리 자동차 회사들이 파산의 문턱 앞에 서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미국 국채의 투자 매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 다 망해도 미국 정부가 망하지는 않을 테고 미국 국채가 부도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최근 미국 국채 가격의 급등, 다시 말해 국채 수익률 급락은 그동안 세계 곳곳으로 빠져나갔던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안전 자산인 국채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회사들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미국 국채 비중을 늘리면서 국채 거품을 부추긴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 국채만큼 안전한 자산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과연 이 같은 미국 국채 쏠림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느냐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주요 기업들 부도 위험과 디플레이션 압력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 한동안 극단적인 국채 선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채 말고는 투자 대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제로 금리의 단기 국채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말 이후 금융기관들이 포트폴리오를 다시 정비할 가능성이 크고 내년에 2조달러 이상의 추가 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어 국채 가격이 하락 반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연준의 유동성 공급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많다. 재정수지 적자가 불러올 달러화 약세도 고민거리다. 자칫 달러화 이탈 현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재정수지 적자 확대는 달러화 가치에 대한 신뢰도를 급격히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특히 유럽이 금리 인하를 중단할 경우 ‘달러화=미국 국채’라는 공식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이 경우 좁게는 미국 국채 이탈, 넓게는 달러화 자산 이탈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 국채의 거품이 꺼질 경우 자금 흐름이 역전되면서 글로벌 자금의 탈 미국 현상과 모기지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또 다른 심각한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채 시장을 어떻게 연착륙 시킬 것인지가 배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경기 부양과 함께 풀어야 할 또 다른 난제라는 이야기다.

김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속셈이 디플레이션 방어와 재정지출 재원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국채 거품을 조장하는데 있다면 경기 부양책이 의회를 통과하고 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확보할 때까지 이런 정책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연준이 장기 국채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을 시사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연준의 고민은 깊고도 깊다. 연준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시중 자금은 국채로 몰려들고 있다. 연준은 단기 국채를 팔아 번 돈으로 장기 국채를 사들여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고 유동성을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채권 시장이 더욱 과열되면서 자칫 달러화 약세와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최대의 채권 펀드 핌코를 운영하고 있는 빌 그로스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국채 발행금리 0%는 터무니없는 고평가”라며 “위험대비 수익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로스는”세계적인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이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펀드매니저 마크 파버는 “과도한 빚 때문에 유발된 위기인데 이것을 또다시 완화된 통화정책으로 풀려고 한다”며 “현재의 유동성 경색 국면이 끝나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오고 달러화 가치가 절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버는 “아직 터지지 않은 거품이 있다면 미국 국채”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는 18일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장기 국채 매입 등 이른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연준의 승부수가 먹혀들 것인지 절망적인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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