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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국민 절대다수를 배신한다면.

법조에 처음 출입하던 무렵의 일이다. 중요한 재판 취재 때문에 방청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판사가 들어오자 법원 정리가 “모두 일어서십시오”라고 외쳤다. 아니, 판사면 판사지 방청객들이 꼭 일어서서 모셔야 하나 하는 생각에 심사가 뒤틀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법조 취재를 좀 하다 보니 그건 판사에 대한 예의라기보다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의미라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법정은 우리 사회의 법적 정의를 구현하는 최후의 공간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선출된 권력이지만 사법부는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 판사는 한 개인을 넘어 그 자체로 헌법 기관을 구성한다. 모두가 일어서서 판사를 맞는 의식은 그가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믿음과 이를 존중하고 따르겠다는 의사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 일부 위헌 판결은 과연 사법부는 언제나 옳은 것일까 하는 상식적인 의문을 여전히 남긴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강부자’ 재판관들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재판 결과에 반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정의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부자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5년을 기다려 정권 교체를 할 수도 있고 최후의 수단으로 탄핵이라도 할 수 있지만 법원은 국민들 대다수와 상반되는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법원의 판단이 곧 정의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전횡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은 국민들의 여론뿐이다. 결국 옳은 것이 이기게 돼 있지만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놓고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맹목적인 불신이나 감정적인 반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다수의 힘이 아니라 상식적인 정의와 보편타당한 가치가 이긴다는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종부세 위헌 판결을 둘러싼 논쟁에는 이른바 징벌적 과세라는 종부세를 내는 2%와 나머지 98% 사이의 갈등이 있을 뿐 부동산 불로소득을 어떻게 환수하고 부동산 거품을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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