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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왜 달러화 패권주의의 몰락을 두려워 하는가.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7, 2008

왜 미국 경제가 어렵다는데 미국 달러화 가치는 오히려 치솟을까. 왜 미국은 천문학적 규모의 빚을 지고도 망하지 않는가. 왜 미국 경제가 부진하면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고통을 받는가. 미국이 채권을 무더기로 찍어내면 왜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그 채권을 사줄 수밖에 없는가.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목표는 사실 미국중심의 금융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자는데 있었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이른바 신 브레튼우즈 체제를 제안했다. 금융위기를 사전에 경고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세계 30위권 글로벌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G20 정상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충돌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데 실패했다.

신 브레튼우즈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먼저 브레튼우즈 체제의 기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44년 7월까지만 해도 모든 나라들이 금 본위 제도를 채택했다. 금이 곧 화폐였고 화폐 가치는 일정 분량의 금으로 고정돼 있었다. 그런데 1930년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제수지 불균형이 심해졌고 결국 금 본위 제도는 붕괴되고 만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달러 본위 제도,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였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순금 1온스=35달러라는 고정된 교환 가치가 성립됐다. 35달러를 주면 순금 1온스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1971년 8월 미국이 금 태환을 중단하면서, 다시 말해 35달러를 줘도 금 1온스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달러화 가치는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들게 됐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미 1971년 이후 유명무실하게 됐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사실 우리나라는 달러화 패권주의의 혜택을 많이 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스템에 기생해 왔다고 볼 수 있다. IMF 직후 높은 환율을 이용해, 달리 말하면 낮은 원화 가치를 이용해 수출을 늘리고 달러화 자산을 대량 확보했다. 그런데 문제는 영원할 것 같았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지고 달러화 가치가 도전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미국과 공동운명체가 됐다. 달러화 가치가 추락하면 동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박탈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려면 유로화나 아시아 공동 통화 등 달러화의 대안을 고민해야 하고 미국 수출 중심의 성장전략도 재고돼야 한다. 미국 금융 자본주의의 떡고물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16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기획재정부 최종구 국제금융국장은 “이번 회의에서 신 브레튼우즈 체제나 IMF 대체기구 설립 등이 논의는 없었다”면서 “기왕의 브레튼우즈를 유지하면서 신흥국 목소리를 더 강화해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국장은 “다들 현재의 IMF를 인정하고 그것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데 공감을 나타냈다”면서 “기존의 틀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신흥 시장국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 국장의 설명은 세계 금융질서의 변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이명박 정부는 달러화 패권주의의 몰락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신 브레튼우즈 창설 논의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와 인터뷰에서 “신 브레튼우즈 체제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이번 위기는 기존 금융감독 시스템이 현재의 금융계 변화에 맞춰가지 못함을 보여준다”며 “IMF와 세계은행 등 현재의 금융체제를 대개혁하든지 완전히 새로운 기구를 만들든지 보완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 틀림없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보도가 나간 직후 “이 대통령이 신 브레튼우즈 체제 창설 논의에 한국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기사가 나간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피가로에도 정정기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IMF 개편, 신 브레튼우즈 체제, 신흥국 연대 등의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이를 신 브레튼우즈 체제 동의로 한정해 대통령의 발언으로까지 인용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은 이번 G20 정상회의 오찬 발언에서도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보호무역을 강화하겠다는 배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듯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난달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보호무역주의로 후퇴해선 안 된다고 의견 일치를 본 바 있고,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이 특별히 요청을 하게 돼 오늘 발언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자유무역은 선진국들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 전략이다. 강력한 보호무역으로 성장했던 나라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난 뒤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성장 잠재력을 꺾고 착취·약탈하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사다리를 걷어찬다면 이미 올라올만큼 올라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다리 없이도 올라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성과 없이 끝난 G20 정상회의에 대한 우리 언론의 반응은 떠들썩했다. 선진 20개국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해하는 청와대의 분위기가 보수·경제지들의 지면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위기 해결에 국제적 공조를 취한다는 원론적인 합의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일부 언론은 “한국이 G20 회의의 최대 수혜국”이라느니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을 맡게 됐다”느니 온갖 낯뜨거운 찬사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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