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저널리즘의 사명, 캐서린 바이너의 묵직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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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가디언의 편집국장, 캐서린 바이너가 쓴 “위기의 시대 저널리즘의 사명” 가운데 일부. 녹색평론 2018년 9월호에서 발췌.

우리의 일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존 에드워드 테일러는 흥분하지 않고 자신이 본 대로 보도함으로써 힘없는 사람들의 사연을 알렸고 권력자들의 책임을 물었다.

가디언은 중간계급 급진파들의 후원을 받아 창간했다. 1821년 5월 창간호는 계몽의 가치, 자유, 개혁, 정의를 표방했다. 테일러의 창간사는 더 다양한 사람들, 더 가난한 계층이 더 많이 교육 받고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주창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디언의 이상이다. 이 문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행동을 취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신문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공적 책임감을 분명히 표출했다.

정치적 변화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상업적 개인적 이해상충을 피하더라도 언론사는 종종 오판할 수 있다. 그래서 사안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준거로 삼을 핵심적 가치와 원칙이 필요하다.

가디언의 핵심 가치들은 1921년 스콧의 가디언 100주년 기념사에서 정립됐다. “논평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는 유명한 경구도, “같은 편의 목소리만큼이나 반대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질 권리가 있다”는 선언도 이때 나왔다. 정직과 청렴(진실성), 용기, 공정적, 독자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아라는 가치도 이 글에서 제시됐다. 스콧이 썼듯이 “신문은 물질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실체다.”

테일러가 제시하고 스콧이 문서화한 가디언의 윤리적 신념은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더 낫게 만들고 싶어한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가디언은 공적 영역의 가치를 믿는다. 공익과 공동선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녔으며 세상은 자유롭고 공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가치, 신념, 생각은 굳건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다만 그 자체는 이 시대의 요구에 가디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려주진 않는다. 우리가 알던 모습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광장은 불량배, 여성혐오주의자, 인종주의자들로 장악되기 일쑤였고 공론장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히스테리가 야기됐다. 감시가 디지털 시대의 사업 모델이 됐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은 끊임없이 추적당했다. 페이스북은 편집자를 알고리즘으로 대체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발행자가 됐다. 페이스북은 우리의 소중한 관심을 이용해 엄청난 돈을 벌면서 공론장을 수백만 개의 개인화된 뉴스피드로 해체하고 모든 사회를 진정한 논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언론을 포함해 모든 기성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역사상 최저다. 기성 제도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그들의 비판에 경멸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 신뢰의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도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동시에 무력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가는 이때에 언론은 그런 소외감을 반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언론인은 자신이 복무하려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 스스로가 사회를 좀 더 잘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협소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언론사는 대중이 뉴스로 여기는 일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권력자들은 이러한 불신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공적 이익에 복무하는 언론의 역할을 잠식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세상을 운영해온 방식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이 모든 문제의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많은 곳에서 시민적 삶의 붕괴를 목도한다. 공적 공간이 헐값에 개발업자에게 팔리고 학교 도서관과 병원이 자금난 속에 문을 닫고 있다. 정치를 뒤흔든 분노의 흐름이 왜 생겨났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신이 작은 마을에서 고투하는 동안 부자들이 큰 도시에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나이든 사람들은 공동체적 삶이 사라지는 것을 한탄한다. 젊은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나 살만한 집을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원자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체적 또는 시민적 참여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돕고 함께 하고 경험을 나누며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 내 삶을 통제하는 권력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지금은 권위주의와 파시즘이 파고들기 쉬운 위험한 순간이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사람들은 어두운 곳으로 끌려가기 쉬우며 새로운 방식의 참여는 혐오를 키우는데 쉽게 이용될 수 있다.

이 모든 위기는 피털루 사건이 구질서 해체의 시작이었다고 한 테일러의 말을 상기시킨다. 지금이 다시 그런 순간일지 모른다. 이제 시급한 질문은 오늘날 가디언이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위기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은 절망과 현실도피다. 그러나 전체 시스템이 고장났고 따라서 모든 것을 파괴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방법도 있다.

사람들은 희망을 되찾고 싶어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가 가졌던 희망을 느껴보길 절실히 원한다. 희망은 순진하게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희망은 미지의 것과 알수 없는 것을 적극 수용하는 것이면서 낙관주의자의 확신도 비관주의자의 확신도 아닌 대안적인 것이다.” (레베카 솔닛)

사람들은 무언가를 바꾸는 데 무력하지 않기에 어떤 일에 적극 참여하고 시민으로 행동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다. 그게 우리가 익숙한 방식이 아닐 뿐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한다면 언론은 그들이 신뢰할만한 사실,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면 언론은 자신의 플랫폼을 활용해 사람들의 상상력을 길러줘야 한다. 희망적인 아이디어, 신선한 대안, 현실과 다른 방식이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현 상태를 비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디언은 진보적 관점을 가능한한 폭넓게 껴안을 것이다. 정책과 아이디어들을 지지하겠지만 정당과 개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진 않을 것이다. 우파와도 관계를 맺고 그들의 목소리도 반영할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누구도 좋은 아이디어를 독점할 권리가 없다.

공익을 옹호하는 저널리즘은 지금의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가디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최선의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하며 가디언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기사를 찾아내고, 다른 직감을 갖고, 다른 통찰력을 얻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말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소홀하게 다뤄진 지역과 주제를 다루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을 진지하게 대하고 보도 주제와 취재원, 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독자들과의 관계는 거래 관계가 아니다. 목적의식을 공유하고 시대를 이해하고 밝히겠다는 책무를 공유하는 관계다. 구독이나 기부, 회원가입을 통해 가디언을 지지하는 것은 가디언의 사명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는 나아가 독자들을 가디언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한다. 기사를 읽는 것이건 듣는 것이건 보는 것이건 또 공유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건 익명의 제보를 하거나 보도에 참여하는 것이건 말이다.

우리는 투표함과 소수의 유력 언론사가 모든 걸 좌우했던 과거를 그리워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에 관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이 시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도와줄 수 있다면 그들은 수년간 느껴보지 못한 힘과 애정을 얻을 것이다.” (이선 주커먼)

우리는 독자들과 함께 웃어야지 결코 그들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독자의 관심은 이용하거나 판매하는 대상이 아니다.

가디언은 사건을 파헤쳐 새로운 정보를 드러내고 권력자들에게 도전할 것이다. 이게 우리 일의 기본이다. 언론의 신뢰가 줄어들면서 인화성 강한 정치적 순간이 되면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가디언을 보러 온다. 우리가 엄정하고 공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디언의 논평은 사실에 기반하지만 뉴스와 의견은 명확하게 구분할 것이다. 우리는 뉴스의 소비가 아니라 독자들이 의미있는 경험을 하도록 편집할 것이다. 근년의 추세는 저널리즘이 구현되는 플랫폼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에 역점을 둬 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정치적 순간이 무엇을 초래할지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오늘 답변돼야 할 심각한 질문이 있고 가디언은 그런 질문에 답을 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가디언은 독립된 소유구조, 사실에 기반한 양질의 저널리즘, 진보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그리고 독자들도 우리 자신처럼 가디언 저널리즘이 가능한 최대한 영향력을 갖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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