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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을 보다.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어왔지만 두 아이의 아빠로서 나는 생활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때 이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 김동원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걸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이 두시간반짜리 영화를 찍으려고 김동원 감독은 12년 동안 이 할아버지들과 함께 살았다.

사진의 김영식 할아버지는 간첩이었다. 그는 1962년 간첩선을 타고 내려오다 울산 앞바다에서 붙잡힌다. 그는 물 고문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1972년에 전향서를 쓰고 1988년에 출감한다. 어쩔 수 없이 전향을 했지만 풀려난 그는 같이 배를 타고 내려왔던 다른 할아버지들을 볼 면목이 없다. 다른 할아버지들은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고 30년 이상 감옥생활을 하다가 1992년에야 풀려났다. 김선명 할아버지처럼 45년이나 복역한 할아버지도 있다.

모두가 다 버리고 떠난 낡은 이념을 붙들고 이 할아버지들은 청춘을 감옥에서 흘려보냈다. 아직도 사회주의와 혁명을 이야기하고 모이면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이들은 여전히 간첩이다. 그러나 늙고 힘없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간첩이다.

할아버지들은 말한다. 그깟 종이 한장이 뭐라고 전향서만 쓰면 풀어주겠다고 온갖 지독한 고문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런 고문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그런 말도 안되는 폭력에 지면 안된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고 한다. 혁명은 실패했지만, 여기서 지면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버텼다고 한다.

할아버지들은 2000년 9월에야 마침내 고향 땅 북한으로 돌아간다.

김동원 감독은 할아버지들을 한번 더 만나고 싶었지만 국가보안법 전과 때문에 북한에 갈 수 없었다. 북한에 다녀온 친구가 찍어온 비디오에서 조창원 할아버지는 말한다. “김동원 그 사람, 말은 못했지만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한없이 좋기만 했던 이 할아버지들은 간첩이었다. 그래서 모든 젊음을 감옥에서 버려야했다. 그 섬뜩한 열정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끝내 고향에 돌아간 할아버지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너무 많은 걸 잃었지만 싸워서 결국 이겼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송환’을 “2003년 최고의 영화”라고 평가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나는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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