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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다.

“너 공부시키려고 학교 관두고 구두통 메고 다녀도 한번도 후회한 적 없어. 어머닌 시장통에서 허리 한번 못 펴고 국수 팔아도 너 땜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아.”

동생은 훈장을 받아서 자기를 돌려보내겠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빠져드는 형이 두렵다. 누구든 그런 형을 놓아두고 혼자서 살아돌아갈 수는 없다. 평생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전쟁의 와중에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아서 함께 돌아가는 수밖에는.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물론 유례없이 훌륭한 영화라는 건 인정. 하지만 아쉬움이 많다.

스펙터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돈 많이 들이고 화약 많이 터뜨린다고 멋진 영화가 되는건 결코 아니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느냐고? 글쎄, 카메라를 너무 흔들어 대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그 정도로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황이라는 건 알겠는데 연출의 과잉이 아닌 정직한 영상이 아쉬웠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뒤로 숨고 화약 냄새와 돈 냄새만 과시하듯 넘쳐났다. 기대가 커서 그랬겠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장면은 굳이 외국영화를 예로 들 것도 없이 ‘무사’나 하다못해 ‘황산벌’만큼도 못했다.

스펙터클에 신경쓰다 보니 형과 동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 미쳐가는 형은 낯설기만 하다. “김진태는 이제 내 형이 아니야.” 그런 형을 부인하는 동생의 반발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은 한가롭게 병원에 누워있을게 아니라 좀더 일찌감치 형을 찾아나서야 했다. 동생은 마지막 두밀령 전투에서 죽어가는 형을 놓고 도망쳐 내려온다. 죽음을 무릅쓰고 형을 찾아나섰던 동생은 주저하지도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설명도 없고 반성도 없다. 이 영화는 정작 중요한 부분에 성실하지 못하다.

줄거리는 한번도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영화 시작부터 동생은 살고 형은 죽도록 예정돼 있었고 예정된 수순을 따라 험난한 전쟁을 거쳐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형은 죽는다.

감동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상상력은 가난하고 지극히 전형적이다. 나는 우리나라 영화의 흥행 공식이 자못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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