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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남자’를 보다.

“L’homme sans tete”. 후안 솔라나스 감독의 17분46초짜리 단편영화다.

머리를 가게에서 사고 팔 수 있다면 어떨까. 돈만 내면 얼마든지 멋진 머리를 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별볼 일 없는 머리밖에 살 수 없다. 그마저도 없거나 내키지 않으면 머리 없이 다니는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머리는 그냥 액세서리, 장식품일 뿐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머리를 달고 다니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유행처럼 똑같은 머리를 달고 다니기도 한다. 몇개씩 마련해두고 기분에 따라 바꿔달 수도 있다. 할머니가 젊은 처녀나 멋쟁이 신사로 변하는 것도 가능하고 백인이 흑인으로 변하는 것도 가능하다. 쾌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소심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음흉하거나 음침하거나 교활하거나 욕심많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머리를 바꿔다는 것으로 당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액세서리일뿐이라고 해도 머리 또는 머리통은 당신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의 머리통을 사랑하는가. 나와 너,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좀더 비약하면, 우리는 결국 그 사람이 가진 어떤 것, 그리고 보여지는 어떤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 머리통이 아닌 다른 어떤 머리통이라면 그 머리통을 가진 사람을 나는 사랑할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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