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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보다.

쿠르드족에게는 나라가 없다. 이란과 터키, 이라크의 국경 산악 지대에 살고 있지만 남의 땅일뿐이다. 이란과 터키, 이라크는 쿠르드족을 내쫓고 싶어하는 한편, 이들이 적당히 국경의 완충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쿠르드족의 역사는 핍박과 시련의 역사였다.

전체 인구는 3천만명에 이르는데 터키 국민의 24%(1500만명), 이란 국민의 12.4%(800만명), 이라크 국민의 23.5%(600만명)을 차지한다. 이밖에 시리아와 구 소련에도 각각 150만명과 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워낙 수가 많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이들을 선뜻 독립시키지 못한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쿠르드족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쿠르드족 출신인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만든 쿠르드족의 영화다.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하다가 관객이 많이 들어 시네큐브로 옮겼다고 한다. (아트큐브와 시네큐브는 각각 자리가 77석과 291석이다.)

아윱의 형 마디는 장애인이다. 15살인데 3살 이후로 키가 자라지 않는다. 어느날 아버지가 지뢰를 밟아 죽으면서 아윱은 12살에 가족의 생계를 떠맡게 된다. 일을 나가는 아윱에게 어린 여동생 아마네는 공책을 사달라고 한다.

아윱의 마을에서 일거리는 국경을 넘어 이라크까지 밀수품을 운반하는 것뿐이다.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야 하고 지뢰도 조심해야 한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눈 덮인 산을 넘는 일은 어린 아윱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힘겹다. 너무 추워서 술을 먹이지 않으면 말들도 산을 올라가지 못할 정도다.

산꼭대기가 올려다 보이는 비탈길에서 아윱의 일행은 총을 든 강도들을 만난다. 어른들은 말을 버리고 도망가지만 아윱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말은 누나가 시집가면서 지참금으로 받은 것이고 아윱은 이 말을 팔아서 형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윱의 울부짖음이 골짜기로 퍼져 나간다.

아윱은 어쩌면 크루드족의 자화상이거나 그들의 생존 욕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아윱은 어두운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받아들이고 맞서 싸워서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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