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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3’를 보다.

주말에 참 많은 영화를 봤다. ’28일 후’를 시작으로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귀를 기울이면’에서 ‘고양이의 보은’까지.

‘터미네이터 3’는 여전히 한심했다. ‘터미네이터 2’가 나온 뒤 12년만이다. 1억9천만달러나 쏟아부었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영화치고는 기대에 못미쳤다. 사실 큰 기대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1편에서 나쁜 놈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2편부터는 난데없이 착한 놈으로 나온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줄거리는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다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와야 영화가 팔릴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3편에도 그대로 나온다. 착한 놈인들 나쁜 놈인들 알게 뭐냐. 선글라스 끼고 나와 멋지게 폼잡고 한바탕 신나게 때려 부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단순함에 나는 경악한다.

1947년생이라는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여전히 무식할만큼 당당하고 그만큼 싸움도 잘한다. 따지지 말고 그냥 즐겨라. 마구 때리고 부수고 신나지 않은가. –; 할 수 있는 한껏 요란하고 난잡한 고속도로 추격 장면을 찍으려고 직접 1억9천만달러를 들여 6km의 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1991년에나 유행하던 문법의 이런 대책없는 액션 영화가 2003년에도 먹혀들까. 뻔뻔하게 12년이나 지나서 거의 똑같은 영화를 다시 내놓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줄거리는 하품이 나올만큼 2편과 거의 똑같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맞상대로 아무리 예쁜 터미네이터가 나온들 마찬가지다.

예쁘지만 나쁜 터미네이터 T-X와 착하지만 구닥다리 기종인 터미네이터 T-800이 2032년에서 2003년으로 날아온다. 인류를 구원할 존 코너와 그의 여자친구, 케이트 브루스터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려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볼 생각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세요.)

미래에서 온 착한 터미네이터 T-800은 지금부터 30년 동안의 미래를 알고 있다. 2003년 컴퓨터의 반란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고 인류는 멸망의 위기를 맞는다. 존 코너와 케이트 브루스터는 컴퓨터에 맞서 싸우면서 인류를 구원한다. 터미네이터는 2003년으로 돌아와 이들을 데리고 핵 전쟁의 위협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멕시코로 도망가는 임무를 맡는다.

마지막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존 코너는 싫다고 말한다. 이대로 도망갈 수는 없고 미래를 알고 있다면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결국 터미네이터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핵무기의 발사를 막으러 돌아간다. 그러나 결정된 미래 또는 지나간 과거를 바꾸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없이 가벼운 영화가 뜻밖의 질문을 던지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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