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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 썬셋’을 보다.

저게 뭘까. 하늘에서 반짝하고 뭔가 빛난다. 비행기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냉장고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함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던 사랑하는 아내를 깔아뭉개 버린다. 아내는 그렇게 죽었다. 코미디 영화치고는 어딘가 낯설다. 웃기는 상황 같은데 좀처럼 웃을 수 없는.

페리는 페인트 회사의 연구원, 이른바 칼라리스트다. 언젠가 아내와 태국에 놀러갔을 때 아내의 머리칼에 물든 노을 빛을 잊지 못해 그 빛깔의 페인트를 만들어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건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빛깔이야. 아득한 평화의 느낌 말이야.”

기억에 남는 장면 몇가지.

호주로 여행을 떠난 페리에게 재수없는 일이 잇따라 일어난다. 사막에 홍수가 나고 버스가 뒤집히고, 길을 잃은 버스 승객들이 거지 몰골을 하고 사막을 걸어 나온다. 비장하면서도 무표정한 사람들, 엉뚱하게 흘러나오는 바하의 성가곡.

여행에서 만난 여자친구 그레이스와 식당에서 밥을 먹던 페리는 포도잼과 마요네즈, 버터, 으깬 감자 등을 차례로 버무려 그레이스가 입고 있는 옷과 똑같은 빛깔을 만들어낸다. 마술 같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그레이스.

어느날 저녁 천둥 번개와 비 바람이 선물처럼 ‘시암 썬셋’의 페인트를 만들어 낸다. 정말 평화로운 빛깔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페리와 그레이스는 서로에게 페인트를 끼얹으며 장난을 친다. ‘시암 썬셋’ 페인트가 짙게 칠해진 담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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