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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다.

현실은 상상에 못미친다. 책을 옮겨놓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열정과 냉정 사이’는 두권인데, 각각 준세이와 아오이가 주인공이다. 두권은 따로따로면서 하나의 제목과 줄거리를 갖는다. 츠치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 두명의 작가가 한 묶음씩 번갈아 가면서 쓴 소설, 읽을 때도 그 순서를 따라 읽는 게 좋다.

가장 아쉬웠던 건, 아오이가 내가 생각하는 아오이가 아니었다는 거다. 뭐랄까, 나는 아오이가 수선화 같은 여자일줄 알았다. 미우라 아야꼬 ‘양치는 언덕’의 주인공 나오미처럼, 무너져 내릴듯 깊은 아름다움을 담은.

아오이 배역은 홍콩 배우 천후이린이 맡았다. 한자로 ‘陳慧琳’이라고 쓰는데 모든 신문이 ‘진혜림’이라고 쓰고 있다. ‘진혜림’이 아니라 ‘천후이린(陳慧琳)’이다. ‘장국영’이 아니라 ‘장궈룽(張國榮)’이고 ‘주윤발’이 아니라 ‘저우룬파(周潤發)’, ‘장자이’가 아니라 ‘장쯔이(章子怡)’.

그것은 우리가 이제 ‘모택동’을 ‘마오쩌둥(毛澤東)’이라고 고쳐 부르고 ‘주용기’를 주룽지(朱鎔基)라고 고쳐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예인 이름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야기하겠다.

천우이린은 예쁘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오이는 아니었다.

줄거리를 모두 알고 나니 영화를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잘 만든 영화는 큰 줄거리 안에 작은 줄거리, 이른바 서브 플롯이 탄탄하게 엮여있다. 책으로 읽을 때는 무심하게 넘겼던 작은 줄거리 하나가 영화에서는 큰 줄거리보다 더 마음에 남았다.

준세이는 오래된 그림을 복원하는 일을 한다. 실력도 제법 인정받고 있다. 화가인 할아버지는 복원 따위는 그만두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지만 준세이에게 그림을 복원하는 일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되살려내는 일이다. 준세이는 10년이나 지난 약속을 잊지 못한다. 준세이는 과거에 매여있다.

그러던 어느날 준세이가 복원하고 있던 치이고리의 그림이 갈갈이 찢긴채 발견된다. 그림의 변상도 변상이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망가뜨린 공방의 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1년이 넘던 복원 작업도 물론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원한을 산 것일까. 곧 공방은 폐쇄된다. 준세이는 일본으로 돌아와 백수로 지낸다.

그리고 얼마 뒤 준세이는 조반나 선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놀랍게도 그림을 찢은 사람이 조반나 선생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조안나 선생은 준세이를 사랑한만큼 준세이의 재능을 질투했을 수도 있다. 가슴 아프고도 쓸쓸한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되돌이킬 수 있단 말인가. 한번 찢어진 그림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 아오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런 준세이와 달리 아오이의 설명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책과는 달리 준세이와 아오이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끼어들었는데, 좀 어색하다. 설마 아오이는 그때까지 준세이를 잊고 있었던 것 아닐까. 영화의 상황설정은 그렇게 밖에 안보인다.

마지막 대사. “기적 같은 건 쉽게 일어나지 않아. 우리들에게 일어난 기적은 단지 네가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야. 끝까지 냉정했던 너에게 난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가슴속의 빈공간을 채울수 있을까. 나는 과거를 뒤돌아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돼.”

가끔은 연애 소설도 괜찮다. 제대로 된 연애 소설을 읽고 싶다면 ‘열정과 냉정 사이’가 좋다. 때마침 가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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