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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호루라기상 심사평.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4, 2019

모두 7명의 심사위원들이 토론해서 결정했습니다만 제가 심사위원장을 맡게 된 건 이 길고 장황한 심사평을 쓰기 귀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거나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기 위해 호루라기상의 취지와 심사 목적, 평가와 소감을 적어 봤습니다.

심사평.

이정환.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 심사위원장·미디어오늘 대표.

가. 심사의 경과.

1. 호루라기재단은 만연하는 비리와 부패, 낮은 인권 의식과 연고주의, 심각한 양극화가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것, 즉 공익을 위해 용감하게 고발에 나서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사회가 한 단계 진전하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고 보고 공익 제보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든 조직입니다. 위험과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하고 불의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를 응원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호루라기재단의 목표이고 사명입니다. 1년에 한 번, 호루라기상 수상자를 수상하기 위해 모이는 이 자리는 우리 사회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정과 정의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2. 호루라기재단에서 “양심적 행위를 장려하고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로 매년 호루라기상을 제정해 시상한지 올해로 여덟 해째입니다.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 선정을 위하여 호루라기재단은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10월 30일까지 활동 실적을 대상으로 2019년 11월 25일까지 후보자 추천을 받았습니다. 최종적으로 호루라기상 수상자 자격 기준을 충족시켜 심사대상이 된 개인 또는 단체는 공익적 활동 부문 열두 후보, 언론 부문 아홉 후보, 총 스물한 명(단체)가 후보로 추천됐습니다.

3. 호루라기재단은 예년과 같이 올해에도 공정한 심사를 위하여 아래와 같이 7명의 심사위원으로 구성되는 심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가나다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박홍식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오상석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이사.
이영기 호루라기재단 이사장.
이을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권상담국장.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4. 심사위원회는 11월 28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30분까지 2시간여 동안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를 올해의 심사위원장으로 호선한 가운데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심사위원회는 호루라기상의 제정 목적과 취지, 그리고 지난 일곱 차례의 심사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철학에 따라 다음과 같이 심사 기준을 확정하고 각각의 후보자에 대해 면밀하게 평가했습니다.

○ 호루라기상 제정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
○ 공익을 위한 양심적 행위로서의 성격,
○ 민주사회 발전에의 기여 가능성 및 파급 효과,
○ 공익과 인권을 위한 개인 또는 단체의 노력과 헌신,
○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불이익과 희생의 가능성과 정도,
○ 활동의 시기 및 지속적인 활동 가능성,
○ 활동의 중요도, 공익활동의 직업과의 관련성 및 외부 지원 여부,
○ 동일한 활동으로 이미 다른 표창을 받은 바가 있는지 여부 등 호루라기상의 제정 목적을 더욱 확산하는 데 고려할 수 있는 사유.

5. 심사위원회는 올해 추천을 받은 모두 스물한 명(단체)의 후보자 모두가 호루라기상 수상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가 살아있고 한국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진전하기 위한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사 방식은 각각의 후보들에 대해 기본 정보를 공유한 뒤 심사위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후보자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열띤 토론 끝에 호루라기상의 제정 목적과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수상 대상자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습니다.

6.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수상하신 네 분께 심사위원회와 호루라기재단을 지원하는 모든 분들을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비록 이번에 선정되지는 못하셨더라도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공익과 인권의 향상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후보자 분들께 거듭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해드립니다.

나. 수상자 심사평.

1.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

○김영민(에스엔지바이오텍 비허가 스텐트 납품 고발.)
○임희진(동물보호단체 케어 동물학대와 불법적 운영 고발.)
○정익준(군납 입찰 비리 고발.)

올해의 호루라기상 후보로 열두 명을 추천 받았습니다. 산업 재해와 의료 비리, 납품 비리, 공직 사회와 병원, 학원, 시민단체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낡은 관행과 그늘을 들추는 용기 있는 공익 제보자들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사례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그 의미를 짚으면서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지만 수상자를 압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곱 명의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이들의 공익 제보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이런 변화가 한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교훈을 남겼는가, 이들이 공익 제보 이후 불이익 또는 위험을 겪고 있는가, 그리고 이들에게 호루라기상을 수여하는 것으로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를 거듭 검토한 끝에 세 명의 수상자를 어렵게 결정했습니다.

세 명의 수상자와 이분들이 만든 변화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김영민(가명)님은 인조혈관용 스텐트 업체 에스앤지바이오텍이 4000여개의 비허가 스텐트를 생산해 병원 등에 납품한 사실을 공익 제보했습니다. 이 업체는 비허가 제조 및 납품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제품 포장 박스에는 허가받은 모델명을 기재하고 비허가 제품을 집어 넣어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판매 중지·회수와 함께 검찰 고발 조치 됐습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기기의 제조 책임과 관리·감독 강화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임희진님은 동물보호 단체 케어의 동물관리국장으로 재직하던 도중 이 단체가 동물권 보호를 명분으로 식용으로 키우던 동물 농장을 급습해 ‘구조’한 뒤 몰래 안락사시켜왔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임희진님은 폭로 이후 업무에서 배제됐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퇴사를 강요당하기도 했습니다. 케어의 행동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지만 동물권 보호의 범위와 안락사의 기준을 두고 사회적 토론이 시작된 데는 임희진님의 공익 제보의 역할이 컸습니다.

정익준님은 군 부대에 어묵 등을 납품하는 만구의 입찰 비리 의혹을 폭로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회사 정아무개 사장이 이동호 당시 고등군사법원장에게 억대의 뇌물과 향응을 제공하면서 입찰 비리를 무마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내부 고발자였던 정익준님은 제보 이후 회사로부터 공갈 협박으로 고소를 당하고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납 비리를 넘어 법조 비리까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공익 제보였습니다.

이밖에도 우천학원의 불법 회계 전용과 업무상 횡령 등을 공익 제보한 권종현님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실을 제보한 고미현(가명)님, 위디스크의 디지털 성폭력 카르텔의 구조를 드러낸 김경욱님, 백제병원의 불법과 비리, 유착 의혹을 공익 제보한 김인규님, 카이스트의 병역 부실 관리 실태를 고발한 김장근님, 늘푸른요양병원의 의료법 위반 등을 공익 제보한 김종백님, 구미시청의 지방 보조금 횡령을 고발한 박영백님, 다나은한방병원의 급여 비용 부당 청구 등을 신고한 신태현님, 팜한농의 산업재해 은폐를 공익 제보한 이종헌님 등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아쉬운 마음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2. 2019 올해의 호루라기언론상.

○김정민·김동희 (MBC PD수첩 PD,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 방송에서 빙상계 내부 폭력 실태 보도.)

올해의 호루라기언론상은 모두 9명(단체)의 후보가 추천됐고 이 가운데 한 팀을 최종 수상사로 선정했습니다. 호루라기언론상은 공익 제보가 단순히 제보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공익 제보 확대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언론과 언론인을 기리는 상입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언론이 얼마나 제보자 보호에 신경을 쓰고 끝까지 제보 내용을 추적해서 진실과 실체를 드러냈느냐, 그리고 보도의 사회적 가치와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가를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MBC PD수첩의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은 전현직 국가대표 빙상 선수들과 코치들,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빙상연맹의 파벌과 승부 조작, 관행적인 폭력과 성폭행 등의 문제를 들춰냈습니다. 특히 이 방송은 심석희 선수의 용기있는 폭로에서 출발해 조재범 코치의 개인적 일탈에 끝나지 않고 ‘빙상 대통령’으로 불리는 전명규 교수의 코치 시절까지 추적해 이 문제가 한국 체육계의 구조적 병폐였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올해는 수상자를 한 팀밖에 선정하지 못했지만 뉴스타파의 이부진 프로포폴 불법 투약 보도, 한겨레의 김성태 의원 딸 부정 취업 의혹 보도, 셜록프레스의 탐사 보도 시리즈 등이 유력한 수상 후보로 검토됐습니다. 이밖에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시리즈 기사를 누락한 자사 데스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경향신문 기자 77명과 MBN 차명 주주 의혹을 금융감독원에 제보한 MBN 직원,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싸우는 박준동 전 조선일보 노동조합 위원장 등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언론의 내부 고발이라는 측면에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의 사례에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일부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있었으나 호루라기언론상은 상의 취지에 맞게 공익 제보가 실질적으로 변화를 끌어내기까지의 어떤 역할을 했는가 또는 공익 제보의 확산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우선적으로 평가하자는 데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모았고 언론인이 아니라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언론의 공정성과 공적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언론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다. 심사평 소감.

내부 고발과 공익 제보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해마다 호루라기상 심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분들이 감내해야 했을 외로움과 두려움, 절망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이해과 배치될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조직에서 퇴출되거나 온갖 불이익과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공익 제보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공익 제보자들이 불신과 냉대, 조직적 저항에 부딪혀 오랜 기간 고통을 겪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분들의 용기가 단단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이기적인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은 기득권을 강화하고 은밀한 유착과 결탁으로 부정과 부패의 사슬을 강화하는 관성이 있습니다. 조직의 위계와 권력 구조 아래 차별과 착취를 제도화하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소수의 목소리를 억압하면서 침묵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런 불의를 용납하지 않을 때, 옳지 않은 걸 옳지 않다고 말할 때 비로소 조금씩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촘촘한 법과 제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직의 논리와 집단의 이익, 권력화된 이해관계 동맹의 담합과 유착을 깨뜨리고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외롭고 두려운 일이지만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는 일입니다. 공익 제보는 세금 낭비를 막고 억울한 피해를 줄이고 부당한 이익과 착취를 처벌하고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거나 거대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 분들의 용기와 결단을 지지하고 격려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진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2019 호루라기상을 수상하신 김영민님과 임희진님, 정익준님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부패 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비가역적인 변화를 촉발한 용기 있는 공직 제보자들입니다. 2019 호루라기언론상을 수상하신 MBC PD수첩의 김정민·김동희 PD님은 언론이 공익 제보를 어떻게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하는지 모범 사례를 보여준 분들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 정의로운 양심의 목소리와 이들의 지지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과 ‘호루라기언론상’을 수상하신 여러분들의 용기와 열정, 그동안의 시련과 고통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상하지 못한 후보 여러분과 공익 제보를 지원하는 호루라기재단의 운영진과 활동가, 후원회원 여러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양심의 목소리들이 더욱 널리 전파되고 변화의 희망과 확신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도 호루라기재단이 양심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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