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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미완의 개혁, 한국 언론은 달라졌을까.

Written by leejeonghwan

May 15, 2019

얼마 전 미디어오늘 창고에서 낡은 VHS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14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창간 10주년 축사 영상이었습니다. 이 테이프를 디지털로 복원하고 자막을 붙여서 공개합니다. 노무현 10주기를 앞둔 5월, 바로 오늘인 듯 생생하고 가까운 느낌입니다.

집권 중반, 보수 언론과 전면전을 벌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고뇌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짧은 영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미디어오늘 창간 기념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해외 순방 일정이 겹쳐 영상 메시지로 축사를 대신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한 보도, 그리고 올바른 여론형성에 노력해 간다면 우리가 목표하는 선진 한국은 더욱 앞당겨질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 개혁 못지 않게 언론 개혁에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는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고 민주당 상임 고문 시절에는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을 그대로 두고는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개혁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는 “1980년대 반독재 운동때 느꼈던 부담감보다 지금 수구 언론에 부담감이 더 크다”면서 “내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버거운 싸움을 하는 것은 개혁세력 방어를 위한 전략이며 몸부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은 “언론 개혁은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편집권과 인사권의 독립이 우선이며, 언론간의 경쟁은 보도의 품질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광고주로부터의 독립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대통령에게는 언론을 개혁할 수단이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개혁하려 한 것은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관계였다.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언론 권력의 부당한 특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 보도 청구를 하거나 법원에 민사 소송을 낸 것을 가지고 언론 탄압이라고 한 것은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엄살에 불과하다. 내가 대통령이던 5년 동안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했다. 나는 다만, 언론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 그뿐이다.”

집권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고 정부 부처 기자실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부당한 언론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논쟁과 토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집권 후반 기자실 개혁을 밀어붙였으나 주류 언론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2007년 1월23일 신년 연설에서는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해 시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언론이 정치를 지배하려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민의 권력으로 돌아가고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노 전 대통령의 2007년 방송의 날 축사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언론 개혁의 제1차적 과제는 언론 자유입니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이것은 감히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시장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사주로부터의 기자의 자유는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인 스스로의 각성과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언론 개혁의 두 번째 과제는 지난날의 유착 구조 속에서 언론이 가지고 있는 일부 우월적이고 특권적인 지위, 유착의 문화,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이게 말끔히 청산됐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과제를 가지고 참여정부와 언론이 숙명의 대결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할 수 없다면 양심과 정의와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서 해결하자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 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그쳤습니다. 보수 언론은 집요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했고 참여 정부의 개혁 과제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기자실은 복구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정치 검찰의 여론 플레이와 언론의 인격 살인에 시달렸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은 정권과 언론이 다시 유착하고 언론 자유는 후퇴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맞섰던 기득권 언론의 구조는 여전히 강고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노무현 10주기를 맞는 지금,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미완의 언론 개혁의 과제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미디어오늘은 오는 17일이면 창간 24주년을 맞습니다. 언론이 달라져야 정치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진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부를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언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에 대한 모색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2005년 5월1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디어오늘 창간 10주년 기념 축사 전문입니다.

미디어오늘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창간 열 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론 속의 언론을 표방한 미디어오늘은 우리 언론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창간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4년 전 즈음에 미디어오늘과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시절이었는데, 미디어오늘은 제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언론이 달라지면 정치도 달라지고 국민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언론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부와 언론 모두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서 건강한 긴장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기사들도 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참다운 언론문화 창달을 위한 여러분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한 보도, 그리고 올바른 여론형성에 노력해 간다면 우리가 목표하는 선진한국은 더욱 앞당겨질 것입니다.

미디어오늘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언론 발전에 크게 기여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거듭 창간 열 돌을 축하드리며 미디어오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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