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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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채훈 PD가 미디어오늘에 클래식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원래는 주마다 쓰기로 했는데 최근에는 연재 주기가 들쑥날쑥하다. 이 엄혹한 시절에 음풍농월하기가 부끄럽다는 게 핑계였는데 그런 그가 언젠가 어렵게 쓴 칼럼이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이다. 이 곡은 1941년 폴란드의 실레지아 포로 수용소에서 초연됐다. 웬만하면 원문을 직접 읽기를 추천하지만 간단하게 옮겨 본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784

프랑스 군인이었던 메시앙은 1940년 6월, 독일군에 붙잡혀 베르덩의 포로 수용소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클라리넷 연주자 앙리 아코카를 만난다. 아코카는 용케 클라리넷을 들고 있었다. 암담한 포로 수용소 생활, 메시앙은 아코카를 위해 무반주 클라리넷 조곡, ‘새의 심연’을 작곡한다. 이 곡은 70km의 고된 행군 끝에 낭시의 수용소에서 처음 연주된다. 이 곡이 나중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3악장이 된다.

영화 같은 장면이지만 실제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메시앙은 “뼈만 남은 포로들 중에는 이빨과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첼리스트 에티엔느 파스키에와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불레르가 합류한다. 메시앙은 이들을 위해 바이올린과 클라리넷과 첼로를 위한 삼중주곡을 작곡한다. 이 곡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4악장 ‘간주곡’이 된다.

다행히 음악을 좋아하는 독일군 장교의 배려로 메시앙은 작곡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파스키에와 르불레르에게 악기도 제공됐다. 수용소에 낡은 피아노가 있어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을 작곡하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을 작곡한다. 이게 각각 5악장과 8악장이 된다.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악장이 늘어났다. 피아노는 메시앙이 직접 연주했다.

1, 2, 6, 7악장에는 클라리넷과 첼로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모두 등장한다. 이런 조합의 사중주곡은 음악 사상 전례가 없다고 한다. 수용소 생활 7개월째인 1941년 1월 실레지아 수용소에서 이 곡의 초연이 연주됐다. 메시앙은 그 연주회를 이렇게 기억한다. “악기는 거의 폐품이었다. 파스키에가 연주한 첼로는 줄이 세 개밖에 없었고, 내가 친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들은 쿡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헐어빠진 군복 차림이었다….”

그렇지만 메시앙은 “내 작품을 이토록 황홀하게, 주의 깊게, 잘 이해하며 듣는 청중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메시앙은 이 곡의 영감을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얻었다고 한다. 메시앙의 표현에 따르면 이 곡은 “이 비참한 시대에 최후의 생명력을 다시 일으키는 것, 내가 언제나 희구해왔고 언제나 가장 사랑해온 것, 즉 크리스트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자 한 작품”이다.

전기 작가 레베카 리신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해 겨울, 실레지아의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음악은 시간에 대해 승리했다. 네 명의 프랑스 포로와 청중들은 리듬의 사슬을 끊고 시대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 놀랍도록 숭고한 이 음악적 아름다움은 청중과 연주자를 함께 고양시킨다. 이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장 끔찍한 시대마저 초월할 수 있는 인간 의지와 음악의 힘을 증거하고 있다.”

(여러차례 시도해 봤지만 메시앙의 음악은 난해하다. 이채훈 PD는 “처음 듣는 음악의 경이와 신비에 귀와 마음을 맡겨보라”고 조언한다. “그의 피아노에서는 금속빛의 광채와 함께 온갖 빛깔의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들을 수 있고, 그의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에서는 새의 이미지로 표현된 절대자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듣기에는 음악보다는 그 뒷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곡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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