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MBC 여러분, 정말 잘 싸웠습니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10, 2012

MBC 파업이 벌써 반년이 다 돼 간다. 7월11일이면 164일째다. 이쯤 되면 투쟁 동력이 한풀 꺾일 만도 하지만 MBC는 여전히 펄펄 끓고 있다. 징계에 소송에, 레임덕으로 쇠락해 가는 정권을 등에 업고 노조 집행부에 구속 영장을 두 번이나 신청하는 등 사측이 갖은 패악질을 서슴지 않고 있지만 투쟁의 열기는 오히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사상 최장 파업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뜨겁고 유쾌하고 신나는 파업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김재철 사장은 방송이 정상화됐다고 떠들고 있지만 MBC 시청률은 이미 종합편성채널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자들이 떠난 MBC 뉴스는 저널리즘의 바닥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친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을 지난 주말 MBC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일 군사교류협정을 둘러싼 논란도 MBC는 축소 보도하거나 논점을 교묘히 은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김재철 헌정 콘서트에는 4천여명의 군중이 몰려들어 ‘J에게’를 합창했다. 김 사장과 무용가 정명자씨의 수상쩍은 관계를 조롱하는 이벤트였다. 끝이 안 보이는 파업에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의 해고 소식이 전해진 뒤였지만 이날 콘서트는 한바탕 신나는 축제였다. 무대에 오른 최 PD와 박 기자는 서로 자기가 더 억울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MBC 노동조합은 파업을 종합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가수 박완규씨는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 정말 외로워서 눈물이 흘러도 진실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당연히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다. “2014년 임기를 채우겠다는 건 김 사장 그 분 생각일 뿐”이라는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도 폭소를 쏟아냈다. 비장한 싸움이지만 MBC 파업 현장은 늘 이렇게 유쾌했다. MBC 노조는 늘 시민들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게 반년이 지나도록 투쟁 열기가 꺾이지 않은 비결이었다.

김재철 퇴진 서명 운동은 일찌감치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자발적인 후원과 모금도 쏟아졌다. 요리 커뮤니티 회원들이 MBC를 찾아와 삼계탕 200인분을 끓여주고 가기도 했다. 합정역 카페 골목에서는 이 동네에 입주한 출판사들이 “보고 싶다 무한도전”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MBC 노조 후원 도서전을 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지난 4월부터 날마다 릴레이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파업은 지금까지 없었다. 서울역에서 벌인 플래시몹을 뮤직 비디오로 만든 ‘MBC 프리덤’은 중독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한 재생됐다. 1992년 52일 파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이채훈 PD는 “그때 우리들이 꿈조차 꾸지 못한 방식으로 새롭게, 즐겁게 투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찬형 라디오본부장은 “이렇게 오래 끌줄도 몰랐지만 이렇게 신나게 잘 싸울 줄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MBC 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사는 동네에 찾아가 수배 전단을 배포하거나 김재철 인형을 쓰고 명동 거리를 배회하는 등 유쾌한 투쟁을 이어왔다. 이들이 완전히 방송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저화질 공정방송’을 표방한 ‘파업채널 M’은 KBS의 ‘리셋뉴스9’와 함께 굵직굵직한 특종을 쏟아냈다. ‘PD수첩’ PD들이 만든 ‘파워업 PD수첩’은 이명박 정부가 방송을 장악했을지언정 기자와 PD들의 영혼을 장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MBC 노조는 이미 이겼다. 이명박과 김재철은 이제 물러날 시간만 앞두고 있다. 군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들은 껍데기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정한 방송을 염원하고 있다. 정말 잘 싸웠다. 다시는 그 어느 정권도 방송을 탐할 수 없도록 소중한 역사적 교훈을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파업을 접고 돌아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뜨거웠던 투쟁의 기억으로 달라진 방송을 만들 거라고 믿는다. 당신들은 이미 이겼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