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이명박의 스물네살.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26, 2003

스물네살의 이명박은 오갈데 없는 신세였다. 그럭저럭 학교는 졸업했지만 학생운동으로 한차례 감방 신세까지 진 터라 여기저기 원서를 내봐도 매번 미끄려지기만 했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건설의 인사담당자는 아예 대놓고 전과자를 뽑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명박은 청와대에 편지를 썼다. “한 개인의 앞날을 국가가 막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게 된다.” 협박아닌 협박에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마음을 바꿔 먹었고 그 편지 덕분에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할 수 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정주영 회장은 물었다.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말은 잘하는구만.” 정 회장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 회장은 당당하고 당돌한 이명박에게 마음이 갔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도 빙둘러 앉아 술을 돌리는데 이명박은 끝까지 버텼다.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면서 원이 쪼그라들고 나중에는 정 회장과 이명박 둘만 남았다. 이명박은 그렇게 정 회장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태국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이명박은 말단 경리였다. 이명박이 보기에 그 공사는 적자가 날 게 뻔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명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경리부 사람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된 이명박은 정 회장에게 그동안 준비해 왔던 자료를 내밀었다. “이 공사는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적자가 났다. 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지마라. 적자가 난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무도 내말을 듣지 않았다.”

이명박은 그날 태국 공사현장의 경리 책임자가 됐다. 깐깐하고 원리원칙만 고집하는 이명박을 정 회장은 깊이 신뢰했다. 입사 3년째 되던 해, 이명박은 중기사업소 과장으로 전격 승진한다. 본사 경리과로 가기를 기대했던 이명박은 실망도 잠깐, 정 회장의 뜻을 눈치챈다.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인부들과 부대끼면서 이명박은 현장의 험한 분위기를 몸으로 익혀 나갔다. 이명박은 출근 시간을 한시간 앞당기고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맨손체조와 구보를 시켰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작업능률이 좋았다. 이명박은 1년 반 뒤 부장으로 승진하고 그 6개월 뒤 다시 이사로 승진한다. 입사 4년째, 28살되던 해다. 이명박은 일찌감치 시장을 내다보고 현대건설이 아파트 공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뒤 현대건설은 아파트 공사에서도 제법 재미를 봤다.

이명박의 초고속 승진은 계속된다. 입사 7년만에 관리담당 상무, 9년만에 전무, 그리고 10년째 되던해 마침내 부사장을 거쳐 12년째 되던해 나이 서른다섯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된다. “당신은 사람을 다룰줄 알아. 나를 위해서, 아니 현대건설을 위해 사장을 맡아주게.” 정 회장은 이명박을 친아들보다 더 깊이 신뢰했다.

그뒤 이명박은 현대건설 회장을 거쳐 1992년 정 회장의 정계 진출과 함께 현대를 떠난다. 정 회장과 다른 길로 정치에 입문해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98년에는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이명박이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문제에 부딪히면 이명박은 망설이지 않고 정면돌파했다. 과장 무렵 때는 굴삭기를 몰고가 남의 공장 앞 도로를 파헤쳐 놓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사장 때는 서슬퍼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기도 했다. 운이 좋았겠지만 이명박은 무슨 일을 시켜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재빨리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명박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간에서는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화는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만 신화일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 작은 용기를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

스물네살의 당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 편으로 만들어라. 작은 일에 매이지 말고 늘 남보다 멀리 내다봐라. 보다 큰 꿈을 꾸고 기꺼이 무모하게 덤벼들어라. 도전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