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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MBC가 말하지 않는 것.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7, 2011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구제역이 처음 신고된 날짜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정부 발표는 지난해 11월29일이었는데 실제로는 23일 첫 의심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이 매일신문 보도로 드러났다. 매일신문에 따르면 방역당국이 첫 신고자에게 신고한 날을 28일로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역 발생 초기 초동대응이 어떠했는지를 밝혀줄 이 중요한 사실을 KBS와 MBC는 침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부다비까지 날아가 요란한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홍보했던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수주는 부끄럽게도 우리 정부가 건설금액의 절반에 이르는 10조원 이상을 28년 동안 대출해 주기로 한 이면 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이 나라에 특수부대를 파견하기로 한 사실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자칫 우리 국민들 세금으로 다른 나라 발전소를 지어줘야 하는 상황인데 이 역시 KBS와 MBC는 침묵했다.

설 연휴 동안 방송 뉴스는 삼호 주얼리호 소식으로 헤드라인을 채웠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달 18일 1차 작전이 실패한 사실에는 침묵했다. 국방부가 선원들 안전을 이유로 엠바고를 걸었고 대부분 언론이 이를 따랐다. 작전이 성공하고 난 뒤에야 언론 보도가 쏟아졌지만 결국 정부의 홍보 이벤트에 들러리를 선 꼴이 됐다. 완벽한 작전이었으며 석해균 선장이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초기 정부 발표 역시 그대로 받아쓰는데 그쳤다.

경향신문 박성진 기자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과 관련,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마치 대통령이 인질들을 구출한 것처럼 국민들에게 말하는 이 부분은 없는 게 나았다. … 기자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국방부의 뭔가 ‘화장실 갈 때 틀리고, 나올 때 틀린’ 것 같은 분위기도 그렇고, 기자가 마치 앞장서서 청와대와 군의 생색내기에 ‘들러리’를 선 것 같은 기분도 그렇다.”

참고 : 해적과 장군의 위장 발언. (박성진의 군 이야기.)

지난 1일 방송 3사가 한 시간 반 동안 이 대통령의 좌담회를 동시 생중계한 것도 한심한 일이다. 질문에 답변하는 기자회견도 아니고 청와대가 기획, 각본에 연출까지 맡는 홍보 이벤트에 방송사들이 동원된 꼴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과학비즈니스벨트는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이었을 뿐 공약 사항이 아니었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방송사들은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았다. 공약집에 버젓이 적혀 있는 내용이었지만 방송사들은 침묵했다.

비슷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청와대 대포폰 사건과 검찰의 축소 은폐 의혹 역시 은근슬쩍 사라졌다.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대학강사의 어처구니 없는 사연에도 KBS와 MBC는 침묵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가 낙마했을 때도 소극적 보도 태도를 보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천안함 침몰 사고 역시 숱하게 제기된 의혹들에 정부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했고 언론 역시 질문하기를 멈췄다.

G20을 전후해 벌어진 낯 뜨거운 애국심 마케팅은 해외 언론의 비웃음을 살 정도였다. G20은 내용에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중재 역할을 하지도 못했고 세계적인 금융 위기의 주범인 미국에게 책임을 묻지도 못했다. 오히려 미국의 충실한 ‘꼬붕’이라는 사실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과연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졌을까. 450조원의 경제 효과는 어디로 갔나.

이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표기 논란과 관련,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발언해 일본의 요미우리신문과 재판까지 갔지만 방송사들은 침묵했다. 청와대의 방송 장악 음모를 파헤치는 단서가 될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 역시 방송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결국 재협상까지 갔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했던 거짓말과 밀실협상에 대한 비판도 떠들썩한 G20 이벤트에 묻혀 버렸다.

4대강 사업이 당초 2m 깊이로 설계됐다가 6m로 바뀐 것과 관련, 애초에 대운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PD수첩’ 의혹 제기가 있었지만 정작 MBC 뉴스는 이 사실을 침묵했다. 오히려 ‘PD수첩’ PD들은 전보 발령이 나서 뿔뿔이 흩여졌고 광우병 보도 관련, 오랜 송사 끝에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KBS에서도 4대강 문제를 다룬 ‘추적 60분’이 2주 동안 결방되기도 했다. KBS는 연말에 무더기 징계를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 직후 KBS와 MBC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면서 방송사들 군기 잡기에 나섰을 때만 해도 방송사들이 이렇게까지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KBS와 MBC의 침묵은 역설적으로 이들 방송이 권력에 장악돼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최근에는 아예 작정하고 정권의 홍보도구를 자처하면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상황이다. 방송의 여론 조작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영향력이 크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이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권력 누수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나에겐 레임덕이 없다”고 공연한 큰 소리를 치기도 하고 그 발언이 언론에 새 나가자 격노하면서 비서관들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서는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며 비꼬기도 했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섰는데 경제는 엉망진창이고 이 대통령은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이미 레임덕 국면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이 이미지 정치에 ‘올인’하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설명된다. 다소 무리수를 두면서 아덴만 여명 작전을 강행했고 작전이 성공하자 언론 속보에 앞서 대통령 담화를 먼저 내보내려고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제가 명령했습니다.” 득의양양한 표정의 이 대통령은 실제로 “집권 이후 가장 잘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데 있다. 지난 3년의 초라한 성과를 평가 받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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