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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에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8, 2008

최아무개(44)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평소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넘어지던 14세 아들이 병원에서 지체장애 1급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병명은 진행성 근이영양증. 의사는 “이 병은 치료방법이 없으니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삶을 연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씨의 아들은 평균 20세 전후로 죽게 된다.


최씨는 아들 이름으로 1997년에 가입해서 10년 동안 보험료를 납입했던 보험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보험사에서는 최씨의 아들이 보험 가입 전인 1996년 이 병과 유사한 질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최씨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의 병원 기록은 최씨의 아들이 2세 되던 해의 일이다. 갑작스런 구토와 발열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밝혀내지 못했다. 퇴원 뒤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는 “근육병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씨의 아들은 곧 퇴원했고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 별다른 질병 없이 잘 자랐다.

최씨는 허약하고 자주 넘어지는 아들에게 한방치료를 계속하다가 10세 되던 해인 2004년, 다시 병원을 찾아가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는 확진을 받았다. 최씨의 아들은 그 뒤 상태가 더욱 악화돼 3년 뒤인 지난해 장애 1급 판정을 받게 됐다. 천문학적인 치료비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아들을 위해 최씨에게 보험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최씨는 “보험에 가입했을 당시인 1997년에는 이 병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게다가 우리 아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보험료를 10년동안 한 달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냈는데 이제 와서 12년 전 병원 치료를 문제 삼아 보험금을 못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보험사의 입장은 또 다르다. 고지의무는 질병을 숨기고 가입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절차다. 이 보험사 관계자는 “최씨 아들의 12년 전 병원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근육병 의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보험사에 고지하지 않은 경우 명백한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해지된다는 이야기다.

보험소비자협회에는 최씨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숱하게 접수된다. 10년도 더 된, 기억나지도 않은 병원 기록을 문제 삼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심지어 보험 사기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보험 모집인에게 구두로 설명하는 것도 안 되고 반드시 문서로 전달해야 고지한 것으로 인정되는데 대부분의 보험 가입자들이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회장은 “이런 경우를 대비하려면 건강보험관리공단에 가서 개별적으로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이나 진료비 청구명세서를 받아 보고 관련 내역을 확인한 다음 이를 정리해 문서로 제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자신도 모르는 의사의 메모 한 줄 때문에 보험금을 못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정작 질병에 걸렸을 때 결격사유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민영 보험사들의 이런 횡포는 언론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언론에서는 건강보험 축소와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를 공공연히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 : 한국판 ‘식코’? 아파도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시대 온다. (이정환닷컴)
참고 : 민영의료보험 감싸고 도는 언론의 이중성 또는 모순. (이정환닷컴)
참고 : 낼 것 다 내고 혜택 못 받는 자동차보험의 진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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