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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무력화 기도 시작됐다.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7, 2008

국민연금의 딜레마는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데서 비롯한다. 평균 수명만큼만 살아도 평생 내는 보험료보다 나중에 받게 될 연금 총액이 더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적자 부분을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은 애초에 적자 재정일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우리는 우리 다음 세대가 내는 돈으로 연금을 받게 된다. 이를 부과식이라고 한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국민연금 고갈은 끔찍한 재앙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고 고갈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인구 고령화의 초반이기 때문에 내는 돈이 받는 돈 보다 많을 수밖에 없고 적립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내는 돈 보다 받아가는 돈이 더 많아지게 되고 적립금이 줄어들다가 결국 고갈되고 그 뒤에는 젊은 세대가 내는 돈을 나이 든 세대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된다. 핵심은 고령화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젊은 세대가 내는 보험료로 나이 든 세대의 연금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 균형을 맞추는데 있다.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됐던 1988년만 해도 소득의 3%를 내면 60세 이후 평균 소득의 70%를 주겠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러다가 10년 뒤인 1998년 보험료를 9%로 높이고 소득 대체율을 60%로 낮췄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보험료는 그대로 두되, 소득 대체율을 다시 40%로 낮췄다.

지난해 국민연금법 개정은 다분히 임시 방편이었다. 고갈을 늦추기 위해 소득 대체율을 줄이긴 했지만 정작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해법은 결국 누군가가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우리 세대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들 반발을 우려해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았다. 고갈 시점을 2047년에서 2061년으로 늦추긴 했지만 정작 가뜩이나 용돈 수준의 연금이 더 줄어들게 됐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를 비판해 왔던 한나라당 역시 해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는 최근 소득 대체율을 4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민연금 개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보험료율을 9%로 유지하되, 소득 대체율을 40%에서 20%로 낮추고 보험료 상한제를 폐지, 낸 만큼 돌려받는 비례연금제도로 바꾼다는 것이다. 또한 기초노령연금을 실시, 노인 80%에게 평균소득의 20%를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인수위 계획에 따르면 기초노령연금으로 월 34만 원 정도, 여기에 국민연금으로 평균 소득의 20%를 받게 된다. 기초노령연금은 별도의 보험료를 받지 않고 정부 재원으로 지급된다. 이 경우 국민연금의 고갈을 늦출 수 있겠지만 연금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노후 생계유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문제는 기초연금의 경우 재원이 수십 조 원에서 장기적으로는 수백 조 원이 필요할 텐데 정작 이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데 있다. 자칫 기초연금 도입을 빌미로 국민연금을 축소한 뒤 다음 정부와 다음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기초연금의 재원을 간접세로 충당할 경우 오히려 역진적인 복지제도가 될 우려도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해 왔다. 노무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에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도입은 민주노동당에서도 일부 동의하는 부분이다. 물론 재원 마련과 급여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크다.

한나라당은 이제 당장 집권당으로서 국민연금의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국민들 반발을 무마하면서 국민연금을 해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바로 기초연금이다. 주목할 부분은 인수위가 국민연금의 보험료 상한을 폐지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보험료 상한이 폐지되면 고소득 계층도 내는 만큼 연금으로 돌려 받게 된다. 이 경우 적게 내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연금을 돌려주고 많이 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좀 더 적게 받는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무력화하게 된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언론은 그런 정치권을 추동한다.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에서 탈출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여론을 주도한다. 그러나 핵심은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보수 기득권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오히려 그들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대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연금의 금융화는 세계적인 연금 개악의 과정이기도 하다. 많이 내는 만큼 많이 받아가는 구조는 고소득 계층에게 유리하겠지만 저소득 계층에게는 연금이 무용지물이 된다. 분명한 것은 고소득 계층의 부담 없이는 연금 개혁의 해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부담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의 고통이 배가된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국민연금 관련 보도는 이런 맥락을 모두 빠뜨리고 있다. 국민연금 무력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의 국민연금 개편에 숨은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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