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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법원 판결… 업체에 대박 안겨준 로또, 책임은 은행원이 독박.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8, 2007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이경춘 부장판사)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 결과가 나왔다. 온라인연합복권, 이른바 로또의 수수료율을 과다하게 높게 산정해 공적 기금의 손실을 초래하고 시스템 사업자에게 과다한 이익을 안겨준 혐의로 기소된 국민은행의 전 복권팀장 이모씨에게 재판부가 징역 4년을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실제 로또 매출액이 추정 매출액을 상회해 발생할 경우 시스템 사업자에게 부당하게 이득이 귀속되고 그만큼 공적 기금이 손실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씨가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복권 사업 사무를 처리, 공적 기금에 7000억여 원의 손해가 돌아간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로또 사업의 7년 간 매출액을 5조4천억 원으로 추정하고 시스템 사업자의 수수료율을 9.205%로 책정했다. 2001년 1월 입찰 결과 9.523%를 써낸 KLS가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고 이씨는 실제 매출액이 추정 매출액을 초과할 경우를 산정하지 않고 수수료율을 확정해 KLS에 과다한 수수료 수입을 안겨줘 업무상 배임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KLS에 대박 안겨준 배임 책임은 은행원 ‘독박’.

실 제로 매출액은 2002년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5년 동안 14조2252억 원에 이른다. KLS는 이 가운데 1조3547억 원 상당의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적정 수수료율인 3.144%를 적용한 것과 비교하면 이씨는 이 회사에 7033억 원 상당을 더 안겨준 셈이다. 적정 수수료율이 적용됐다면 공익기금으로 활용됐을 돈이다.

로또의 당첨금은 판매금액의 정확히 50%다. 여기에서 5등 당첨금을 먼저 주고 나머지 가운데 60%가 1등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2등과 3등이 10%씩, 4등이 20%씩 당첨자 수만큼 나눠 갖게 된다. 판매금액의 14%는 운영비, 36%는 공익기금으로 배분된다. 1천 원짜리 로또 한 장을 사면 500원을 운영비와 공익기금으로 쓰고 500원이 당첨금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다.

운영비는 로또 사업자인 국민은행과 KLS, 소매점 등이 나눠갖는다. 국민은행이 2%, 소매점이 5.5% 정도를 갖고 신문 광고 등의 마케팅 비용으로 따로 3%가 빠진다. KLS는 9.523%를 수수료를 받게 된다. 사업 규모가 처음 예상보다 10배 이상 커지면서 KLS는 한때 영업마진이 무려 69.2%에 이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아직까지도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 문제를 왜 이씨 혼자 책임을 지느냐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배임죄로 기소된 사람은 이씨 뿐인데, 관련 공무원들의 안일한 업무 처리와 회계사무소의 부실한 업무 수행도 사건에 일조한 것으로 보이며, 개인적 이득을 취한 사실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해 법정형보다 다소 낮은 형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시스템 사업자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기구인 복권협의회는 의제가 있을 때만 간사기관인 건설교통부의 회의 소집 통보에 의해 비정기적으로 회의가 개최되고 회의에 참가하는 참가하는 공무원들도 대부분 순환보직 일환으로 전문지식이 부족해 이씨 등의 보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로또 사업의 정책적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정작 건설교통부나 복권협의회에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5년 간 14조 원에 이르는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 데 따른 책임을 은행원 개인이 뒤집어 쓴 상황이다. 특정 기업에 사실상 특혜를 준 셈인데도 그 구체적인 정황이나 배경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정책적 실패, 책임자는 없다.

재판부는 “그동안 이씨가 성실하게 재판을 받아 왔고, 유죄가 피고인의 배임 의사 인정 여부에 달린 사건인 만큼 항소심의 판단을 구해볼만 하다”며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한편 이와 관련,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만 밝혔다.

복권은 물신주의와 개인주의, 계급의식을 확산시키고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을 은폐한다. 복권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귀족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복권 광고는 현실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정부는 기꺼이 일확천금의 꿈을 조장하고 관련업체들의 폭리를 방조한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했지만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고착시킨다는 맥락에서 복권 역시 마찬가지다. KLS가 챙긴 7033억 원의 부당이익은 불특정 다수 저소득 계층의 호주머니를 턴 결과다. 이번 재판은 정부의 복권 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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