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식코’? 아파도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시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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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BBK 공방으로 허송세월했던 탓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대통령을 뽑았는지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보험지주회사 도입 등 철저하게 삼성만을 위한 정책 변화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정권 교체의 일등공신인 보수·경제지들은 철저하게 시장 원리로 굴러가는,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바람잡기에 나섰다. 문제는 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과연 기득권 계층 뿐만 아니라 경제 주체 전반에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눠줄 것이냐 하는 점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는 공공의료가 붕괴하면서 시장에 내몰리게 된 미국 ‘의료산업’의 끔찍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식코’는 바다 건너 불 구경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머지않은 미래에 닥쳐올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의료 관련 공약은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손가락 두개 붙이는데 6840만원.

이 영화는 상처난 부위를 직접 바늘로 꿰메고 있는 웨인이라는 남자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병원에 갈 수 없다.

릭은 집에서 나무를 자르다가 전기 톱에 손가락 두개를 잘렸다. 병원에서는 중지는 6만달러, 약지는 1만2천달러가 든다고 한다. 두 손가락을 모두 붙이려면 7만2천달러, 환율 950원으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6840만원이 된다. 릭은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돈을 모두 직접 물어야 한다. 릭은 결국 중지는 버려두고 약지만 붙이기로 한다.

마이클 무어에 따르면 릭처럼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4800만명이나 된다. 전체 인구의 20% 규모다. 이 가운데 1만8천명이 해마다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죽는다.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된 2억5천만명의 사람들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정작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보험회사들은 영리 목적의 주식회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던 로라 버넘은 보험회사에서 앰뷸런스 비용을 댈 수 없다고 해서 직접 비용을 물어야 했다.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화면을 보면서 묻는다. “앰뷸런스에 실려가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허락이라도 받으라는 말입니까.”

진단은 의사가, 결정은 보험회사가.

덕 노우의 딸은 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보험회사의 반대로 한쪽 귀만 수술을 하게 됐다. 양쪽 모두 수술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에이미는 뇌종양 수술을 거부당했다. 진단은 의사가 내리지만 처방은 보험회사가 결정한다. 트레이시는 골수 이식자를 찾았지만 보험회사가 반대하는 바람에 수술을 하지 못하고 결국 죽었다. 이들은 비싼 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는데도 정작 병에 걸렸을 때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또는 보험에 가입하기 전부터 있던 질병이라는 이유로, 또는 애초에 약관에 보장하지 않기로 기재된 질병이라는 이유로.

제이슨처럼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애초에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다. 제이슨은 병에 걸리면 전 재산을 쏟아붓고 파산하거나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마이클 무어는 전직 보험회사 의학 고문의 의회 청문회 장면을 중계한다. 그는 거부처리 비율이 높을수록 자신의 연봉이 올라갔다고 증언한다.

“보험 가입 과정에서 가입 희망자 여러분을 솎아낼 수 없거나 의사가 처방한 치료를 거절하기 힘들거나 수술비 보장을 해 줘야 할 판국이 될 것 같으면 회사는 이 사람을 부릅니다. 청부업자인 셈이죠. 아이넘 씨가 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사 돈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분은 그저 가입 양식에서 여러분이 못 보았던 한 점의 잘못을 들춰내거나 있는 줄도 몰랐던 사전 조건을 발견하면 됩니다. 살인사건 다루듯이 조사합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고객의 의료기록들을 철저히 분석하는데 못해도 최근 5년 정도의 분량을 가지고 뭔가 숨겼던 사실이나 알리지 않았던 정보가 혹시 있나 뒤지지요. 그러면 이쪽에서 약관상 해지를 하든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겨서 돈을 못 주겠다고 하든 할 수 있죠. 만약 고객이 알리지 않은 사실이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저희는 기존 거절사례를 또 찾아봅니다. 고객들은 대체로 옛날 처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예전에 무슨 증상으로 인해 보험금을 타먹었다면 꼼꼼한 사람은 그 의료기록을 살펴본다 이거지요. 그리고, 한때 돈을 주던 증상은 더 이상 그런 증상이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맞아요! 말장난이에요. 근데 이게 방법입니다. 만사공평하게 대해야 할 일인데 생략되어 있던 사전 의료기록으로 인하여 보험회사랑 엮이기만 하면 이것 참 환장할 돈이거든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지요. 되돌아보면, 제가 누굴 죽인다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사람들 인생을 괴롭게 했느냐고요? 그렇지요. 왜 안 그렇겠어요. 보험회사 일은 오래 전에 손 씻었습니다만 그런다고 제가 이 더러운 바닥에서 일했던 경력을 속죄하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의료 산업화 걸림돌 규제 철폐하겠다.”

이 영화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민영보험 활성화와 영리법인 병원 설립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도 “보건의료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의료산업화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 당선자는 11월 15일 대한의사협회의 보건의료 정책 질의에서도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의료인이 전문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치료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머니투데이는 21일 <'의료 산업화' 강력 드라이브 예고>에서 “이 당선자는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의료 민영화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건강보험을 받지 않는 병원이 생겨나면 의료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확산되기 시작하고 미국처럼 의료 양극화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야 비용을 더 치르더라도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겠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의료 양극화를 불러오게 된다. 건강보험에서 이탈하려는 고소득 계층이 늘어날수록 건강보험 재정은 파탄날 것이고 혜택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민영 의료보험 시장이 활성화되겠지만 저소득 계층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민영 의료보험이 모든 질병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는 19일 서울신문 칼럼 <30년 묵은 건강보험 패러다임 바꿔야>에서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만 보도록 하는 제도를 고쳐 건강보험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순수 민영의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의료를 분배의 볼모로 잡아두는 패러다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의료 양극화를 현실화하는 이런 주장이 이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22일부터 ‘건강보험 폐지 검토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진행 중이다. 28일 현재 1만4천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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