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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의료보험 감싸고 도는 언론의 이중성 또는 모순.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2, 2007

건강보험을 공격하던 언론들이 민영의료보험의 횡포에는 유난히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민영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들 언론은 공공복지를 축소하고 사적복지를 강화하자고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다. 우리나라는 복지 기생이 문제가 아니라 복지 이탈이 문제다.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간섭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이를 언론이 부추기고 정치권이 동조하는 국면이다.


금융감독원이 11일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할 때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 공개했다. 주요 언론이 이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보험에 가입할 때 최근 5년 이내 앓았던 질병이나 치료 사실 등을 반드시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 설계사에게 구두로 알린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 경우 정작 질병이 발생해도 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보험 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다.

서면으로 과거 병력 밝혀라, 안 그러면 보험금 못 준다.

대부분 언론이 단순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지만 이는 꽤나 심각한 사안이다. 이를 가입자의 고지의무라고 하는데 실제로 고지의무를 둘러싼 보험 분쟁 사례는 숱하게 많다. 일단 가입을 받아 놓고 정작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는 고지의무를 지키지 않아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틴다는 이야기다. 보험사에서 실시하는 건강진단을 받고 가입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할 수 있다.

질병이 발생했는데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면 뭐하러 비싼 보험료를 달마다 낸단 말인가.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회장은 “보험사들이 이런 함정을 악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적당히 가입을 받아주고 문제가 없으면 보험료를 받아 챙기는 거고 발병을 하게 되면 고지의무를 문제 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해 금감원에 집계된 보험분쟁 민원 2만7171건 가운데 보험모집과 관련된 미원이 5900여건, 전체 21.7%를 차지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보험사에서 기왕증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도 흔하다. 한번이라도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간 사실이 있다면 보험사는 온갖 의료 기록을 뒤져 이를 찾아내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구실을 만들어 낸다. 보험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민영 의료보험에 이처럼 구멍이 많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장조건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치매를 보장하는 상품의 경우 기질성 치매와 외상성 치매를 모두 보장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뇌경색도 뇌출혈 뿐만 아니라 다른 뇌질환까지 포함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 유방암이나 갑상선암 등 조기 진단이 쉬운 암에 대해서는 보상한도를 10~20% 줄인 사례도 있다.

약관에 적힌대로만 아파라?

문제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적힌 보험약관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이런 조건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내가 뇌전동맥 협착에 걸릴지 비외상성 두개내 출혈에 걸릴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내가 가입하는 보험이 뇌전동맥 협착만 보장하고 비외상성 두개내 출혈은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암 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막상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보험회사와 암이냐 아니냐를 놓고 분쟁을 벌이는 일도 흔하다. 의사가 진단서에 확정진단이 아니라 임상추정이라고 기재했다면 보험금을 못받게 될 수도 있다. 확정진단을 받지 않고 사망할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약관에 있는대로만 아파야 한다는 이야기다. 갑상선 종양에 걸렸는데 절개수술의 경우에만 보험금이 지급되고 고주파열치료술의 경우는 지급되지 않는 약관도 있다. 보험소비자협회에 따르면 약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보험사기꾼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백혈병 환자의 경우 중심정맥관 수술을 수술로 인정하지 않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을 하기 전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수술인지 약관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는 18조7천억원, 진료비로 돌려받은 보험금은 21조6000억원이다. 1000원을 내고 1115원의 보험혜택을 받은 셈이다. 부족한 보험금은 정부지원금 3조8000억원으로 충당됐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0% 수준이다. 보험료를 제대로 내면 병원비의 60%를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내준다는 이야기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영의료보험 시장은 연간 1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만약 민영의료보험에 들어갈 보험료를 건강보험 재원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전 국민 무상의료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민영의료보험과 사적복지의 비용을 감안하면 무상의료는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민영의료보험 들어갈 돈으로 건강보험 확대하면 어떨까.

2004년 기준 우리나라 암 질환 의료비는 2조1천억원 규모다. 건강보험공단이 1조원을, 환자들이 1조1천억원을 부담했다. 우리나라 암보험시장은 3조원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그 3분의 1만 건강보험 재원을 늘려도 건강보험으로 암 질환을 100% 무상 진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도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부담하면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감기 한번 걸려 병원에 가면 3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미국식 의료제도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조금만 살펴보면 민영의료보험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은 공공의료를 넘어 장기적으로 무상의료로 가는 유일한 대안이다. 아울러 저소득 계층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언론은 막무가내로 건강보험을 비판하면서 정작 민영의료보험의 횡포에는 한없이 너그럽다. 수많은 보험 분쟁사례들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보험료를 다 내고도 정작 아플 때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 역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적복지가 공공복지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일보는 11월23일 사설에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재정흑자를 유지하다 갑자기 적자로 돌아섰고 앞으로도 인상폭을 높이지 않으면 파산에 이를 지경이라니 당국의 재정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는 그만큼 국민들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이 흑자를 내려면 그만큼 혜택을 줄여야 한다. 방만한 경영은 비판해야겠지만 언론의 건강보험 비판은 다분히 맹목적이다.

문화일보는 11월24일 사설에서 “흑자가 나면 제멋대로 쓰고 적자가 나면 국민을 상대로 보험료 인상과 혜택 축소 모두를 감수하라고 압박하면 된다는 식의 근시안으로는 지금 같은 악순환만 확대재생산할 수밖에 없다”며 “인상 고지서 발부에 앞서 건보공단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업무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5일 칼럼 <시한폭탄 건강보험료>에서 “건보료는 직장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쌓여 폭발할 날만 기다리는 시한폭탄으로 변했다”며 “건보료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할 묘안을 내놓을 대선 후보는 어디 없을까”라고 개탄했다.

한편 주요 대선 후보들은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반대하는 분위기다. 건강보험 국고 지원율을 현행 20%에서 30%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지나친 재정압박을 이유로, 정동영 후보는 30%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 후보는 오히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영리법인 병원 설립 허용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외국 의료기관 유치 등을 통해 시장 친화적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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