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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스웨덴 모델 잘못 이해하고 있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3, 2007

[인터뷰]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 연구실장 얀 에들링, “사회적 합의 모델은 여전히 유효.”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스웨덴 정권 교체 이후 1년이 지났다. 1932년 이래 65년을 장기 집권했던 사회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일부에서는 사회민주주의의 퇴조와 이른바 스웨덴 모델의 실패를 거론하기도 했다. 복지정책의 점진적인 개혁과 세금 감면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에 성공한 우파연합은 스웨덴 모델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국내에서 정권 교체 이후 스웨덴의 변화를 보는 관점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스웨덴 모델은 붕괴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광범위한 복지 혜택을 강조해 왔던 스웨덴도 결국 복지보다는 성장과 일자리를 선택했다. 성장 없는 복지는 없다. 스웨덴에서도 복지모델을 축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국내 언론은 스웨덴의 정권 교체를 스웨덴 모델의 붕괴 또는 복지모델의 대대적인 축소로 받아들였다. 보수·경제지들은 성장과 일자리 창출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논리를 확대 재생산해왔다. 이 논리는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공격하고 복지 축소와 감세, 규제 완화,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최근 방한한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 얀 에들링 연구실장을 만났다. 나는 총선을 앞둔 2005년 11월과 총선 직후인 2006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스웨덴을 방문하고 그를 인터뷰한 바 있다. 그는 혁신시스템청(VINNOVA)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혁신시스템청은 기업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정부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부서다. 대기업의 해외 이주와 고용 없는 성장, 경제의 금융 종속의 대안으로 연구개발 투자와 중소기업 혁신을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얀 에들링은 “한국은 스웨덴 모델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웨덴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고 다만 부분 조정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 그렇다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스웨덴 모델은 뭔가.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사회적 연대와 합의 시스템이다. 최근 스웨덴의 변화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부분 조정일 뿐 복지 시스템의 전면 해체라고 보는 건 옳지 않다. 스웨덴 국민들은 여전히 사회적 연대와 합의 시스템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세계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효율적이기도 하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시스템의 기본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는 데 많은 국민들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 그러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연대임금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등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실업이 늘어나고 있고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거침없이 확산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합의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이미 1990년대부터 잘 먹혀들지 않게 됐다. 스웨덴 모델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핵심 축이 제조업 베이스에서 서비스업 베이스로 바뀌고 있고 노동시장 정책도 이에 따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과 노동의 합의 체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본이나 노동이나 최근의 위기를 복지 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우파연합이 집권에 성공한 것은 사민당보다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모델의 축소 또는 퇴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 성인의 20%가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실업보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10년 이상 실업자의 70%가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는 통계도 있다. 이를 두고 바깥에서는 복지병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과도한 사회적 비용과 성장의 정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이 있는가.
“실업과 실업보험 혜택이 반비례 관계라면 실업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실업보험을 부분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부분을 일시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실업이 완화되고 성장의 동력이 확충되면 다시 혜택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복지 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다. 이런 믿음이 바로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 한국에서는 성장과 복지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성장이 있어야 복지도 가능하다는 논리가 지배적이고 스웨덴의 변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웨덴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절부터 복지 체계를 갖췄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지 않는가. 개개인의 가정이 부담하는 양육비와 질병치료비, 실업수당 등을 복지 체계에서 부담하도록 정책을 바꾸면 충분히 가능하다. 핵심은 사회적 연대가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데 있다. 미국이나 영국은 스웨덴보다 훨씬 더 많은 1인당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퀄리티는 오히려 떨어진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미국이나 영국의 시스템을 따라가려는 것 같다. 양극화와 실업 해소 역시 마찬가지다. 분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 2012년 대선에서 사민당의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보나.
“어려울 것 같다. 사민당은 국민들을 설득할만한 변화의 밑그림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민들이 우파연합을 선택한 것은 복지 시스템의 축소나 해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데 우파연합이 더 유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분 조정일뿐 후퇴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인터뷰에 배석한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스웨덴 모델을 코포라티즘(국가 조합주의, corporatism)으로 설명했다. “우리는 그동안 스웨덴 모델을 찰츠요바덴 협약이나 렌마이드너 모델 등 특정 제도나 시스템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제도나 시스템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그 근간에는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국가의 성장 모델을 고민하는 사회적 연대와 합의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스웨덴 모델을 타협주의로 보는 시각만큼이나 자본과 노동의 힘의 대결로 보는 시각 역시 정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스웨덴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바로 이 사회적 연대와 합의의 문화다.”

참고 : 스웨덴의 변화를 보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정환닷컴)
참고 : 복지천국 스웨덴, 신자유주의 도전에 무너지나. (이정환닷컴)
참고 : 스웨덴 모델을 주제로 쓴 다른 글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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