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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버블타입인가.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3, 2004

무버블타입은 새로 글을 쓸 때마다 HTML로 된 하나의 독립된 페이지를 만들어 낸다. 대부분 게시판 프로그램이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하고 그때 그때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불러들여 페이지를 잠깐 만들었다가 없애는 것과 다르다.

무버블타입은 완성돼 있는 페이지를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되지만 게시판 프로그램은 페이지를 보여주려면 먼저 CGI나 PHP 따위를 굴려서 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링크를 클릭할 때 볼 수 있는 건 거의 비슷하지만 클릭하기 전에 페이지가 이미 존재하는 무버블타입과 달리 게시판 프로그램에서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을뿐 페이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꽤나 심각한 차이다. 검색엔진은 무버블타입이 만들어낸 페이지는 읽을 수 있지만 게시판 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나 있지도 않은 페이지는 읽지 못한다. 검색엔진은 무버블타입이 만든 페이지를 각각 독립된 정보로 인식한다. 무버블타입은 각각의 페이지를 링크로 연결한다. 다른 블로그와 트랙백을 주고 받으면서 무버블타입의 링크는 더욱 늘어난다. 링크에 비중을 두는 구글 같은 검색엔진은 무버블타입이 만든 페이지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만든 모든 페이지가 검색엔진에 노출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때 당신의 블로그는 더이상 당신의 일기장이 아니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당신의 신변잡기를 블로그에 늘어놓지 마라. 블로그는 오해되고 오용되고 있기도 하다. 네트워크를 쓰레기로 오염시키지 마라.

이제 블로그의 정의가 명확해진다. 블로그는 당신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고 유통하는 1인 미디어다. 당신의 블로그는 네트워크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열려 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블로그는 독자를 끌어 모으겠지만 쓰레기를 쏟아내는 블로그는 네트워크의 사회악이다. 지나가는 독자를 가끔 끌어들일 수는 있겠지만 그런 블로그는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대중이 미디어를 직접 소유하고 담론을 만들어 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블로그를 통해 네트워크에 우리의 생각과 주장을 쏟아낸다. 무버블타입을 주제로 쓴 이 글은 몇일 뒤에 구글의 검색엔진에 걸려들 것이다. 무버블타입이라는 주제로 정보를 검색하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은 구글의 링크를 클릭하고 이정환닷컴의 이 페이지에 접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네트워크라는 거대한 협업 시스템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블로그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

“권력투쟁은 앞으로 더욱 더 지식의 배분과 그 접근기회를 둘러싼 투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식이 어떻게 누구에게 흘러가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권력남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내일의 기술이 약속해주는 보다 살기 좋고 민주적인 사회를 창조하지도 못할 것이다. 지식의 장악이야말로 인류의 모든 조직체에서 전개될 내일의 전세계적 권력투쟁에서 핵심문제인 것이다.” / 엘빈 토플러, ‘권력이동’ 가운데.

무버블타입이 게시판 프로그램과 다른 것처럼 무버블타입이 꿈꾸는 네트워크는 네이버나 엠파스의 네트워크와 다르다. 네이버나 엠파스 블로그는 회원 블로그 사이에 수많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지만 그 네트워크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네트워크처럼 폐쇄적이다. 무의미한 콘텐츠가 대책없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정보는 정보의 가치를 얻지 못하고 흘러다니다가 결국 파묻힌다. 네이버나 엠파스 블로그는 아직도 확장된 커뮤니티 그 이상이 아니다. 커뮤니티에 만족하고 싶으면 네이버나 엠파스에 계속 머물면 된다.

결국 무버블타입이 유일한 대안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네트워크에 접속해 당신의 생각과 주장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과 공유하고 지식과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작업이다. 무버블타입으로 만든 블로그는 독립된 정보 생산 단위가 된다. 굳이 네이버나 엠파스에서 허우적거릴 이유가 없다.

공적 공간인 블로그와 사적 공간인 게시판을 병행할 것을 추천한다. 바깥으로 열려있는 블로그와 머물러 있는 게시판은 분명히 다르다. 써야할 글도 다르고 읽는 독자도 다르다.

참고 : ‘권력이동’을 읽다. (이정환닷컴)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에서 몇 문장을 옮겨봅니다. 오래된 책이라 번역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참된 말 – 이는 곧 일이며 실천이다 – 을 한다는 것은 세계를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행해지는 말은 일부 소수인들의 특권이 아니고 만인의 권리라는 뜻이다. 어느 인간이나 홀로 참된 말을 할 수는 없으며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버리는 규정된 행위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참된 말을 할 수도 없다.

대화란 세계가 매개체가 되어 세계를 ‘이름짓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만남이다. 따라서 세계를 ‘이름짓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이름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는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할 권리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말할 권리를 상실당한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기네 말을 이야기할 원칙적인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은 우선 이 권리를 되찾고 이같은 비인간화하는 침해가 계속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인간들은 자기네 말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세계를 ‘이름지음’으로써 세계를 변혁하게 된다면 분명 대화는 인간들이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찾는 길이다. 대화란 이처럼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다 대화는 대화자들의 일치된 사고와 행동을 변형하고 인간화해야 할 세계에 전달해주는 만남이기 때문에 이 대화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망각을 ‘예탁하는’ 행위로 전락시킬 수도 없고 토의자들이 그저 ‘소비시킬 뿐인’ 사상 교환으로 변질시켜서도 안된다. 대화는 하나의 창조행위다. 이것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교활한 지배도구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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