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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3, 2007

‘증권가의 작전 세력들’이란 책을 읽었다. 대신증권에 근무하는 허윤호씨가 쓴 소설인데 상당 부분 실화에 기초한 듯 주가 조작 작전을 둘러싼 상황 설정이 그럴 듯하다. 투자상담사로 있는 주인공이 크게 손실을 보고 좌절하고 있던 가운데 작전 세력들의 꼬임에 빠져 들어 크게 한탕을 하고 나중에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살인 사건까지 벌어진다.

작전이 시작해서 종료하기 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목표는 건양식품.

첫번째 단계는 루머를 퍼뜨려 주가 떨어뜨리기. 건양식품에서는 주가가 폭락할만한 사유가 없다는 공시를 내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런 공시도 작전의 일환이다. 작전 세력들은 이 틈을 노려 주식을 사들인다. 대주주 보유지분을 제외한 유동물량 130만주 가운데 작전 세력들은 115만주를 사들인다. 매수 단가는 3500원선.

두번째 단계는 호재 터뜨리기.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온다거나 특허 취득이 임박했다거나 새로운 공시가 나올 때마다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고 매수를 부추기는 증권사 보고서도 쏟아져 나온다.

세번째 단계는 물량 주고 받기. 주가가 6천원 언저리까지 오르면 작전 세력들끼리 사고 팔면서 거래량을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 물량을 뺏기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계속해서 상한가 매수 주문을 집어 넣으면서 주가를 1만원까지 끌어올린다. 갑자기 매물을 쏟아내 주가를 떨어뜨린 다음 일반인들 물량을 다시 받아오는 전략도 병행한다.

네번째 단계는 한달 정도 쉬면서 데이트레이더들을 끌어들이기. 거래량이 충분히 늘어나 작전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남아있는 유동물량은 6만주 가량인데 거래량이 10만주가 넘게 된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량을 주고 받으면서 주가를 끌어올린다. 목표 주가는 2만5천원.

다섯번째 단계는 분식회계. 회계법인과 짜고 자산재평가 차익이 200억원 이상 발생했다는 공시를 내보낸다. 외국인들이 주당 5만원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는 공시도 나온다. 상한가 매수 잔량이 쌓이고 주가는 미칠 듯이 뛰어 올라 7만원에 육박한다. 10만원까지도 곧바로 달려갈 분위기다.

그리고 며칠 뒤. 상한가 매수 잔량이 400만주나 쌓여 있었는데 갑자기 매수 잔량이 확 줄어들더니 거래가 체결되기 시작했다. 주가는 상한가에서 하한가로 곤두박질쳤고 3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거래가 조금씩 되기 시작한 때는 이미 고점 대비 2만5천원이나 떨어진 상태였다.

작전 세력들이 이 작전에서 벌어들인 돈은 500억원 이상이었다. 대부분 첫날 상한가에 물량을 정리했고 일부 물량은 하한가에 털었다. 이 작전에는 건양식품 경영진을 비롯해 증권사 애널리스트, 홍콩의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대거 개입됐다. 여러 증권사 지점의 투자 상담사들이 뒤치다거리를 맡은 것은 기본. 이들은 많게는 100억원에서 수십억원씩을 나눠가졌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주가조작은 대부분 적발된다. 적발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일단 온라인 주식 거래의 모든 데이터는 금융감독원에 자료로 남는다. 방대한 자료 가운데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것은 컴퓨터의 몫이다. 특히 IP 주소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이번 작전처럼 5명 정도가 계속해서 물량을 서로 주고 받는다면 잡히지 않기가 더 어렵다. 다른 컴퓨터를 쓰거나 ID를 계속해서 바꾸거나 지방으로 옮겨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움직임은 결국 적발이 되게 돼 있다.

혐의가 잡히면 금융감독원은 곧 상황 재연에 들어간다. 이를 테면 지난해 10월17일 오전 10시47분의 상황을 그대로 모니터에 띄워놓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 A는 왜 7210원에 주식을 내다팔았다가 10분 뒤에 다시 7220원에 사들였을까. B가 주식을 파는 때와 C가 주식을 사는 때는 왜 매번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금융감독원은 이런 의문을 하나하나 정리해 증거로 제시한다. 왜 당신은 오전 11시13분 상한가에 매수 주문을 냈나. 7350원이면 살 수 있는데 7500원에 주문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주문을 냈다가 다시 취소한 건 또 무슨 이유 때문인가.

금감원은 전화 통화 내역이나 금융 거래 내역까지 샅샅이 훑는다. 의심이 가는 이들 사이에 전화 통화가 있었거나 특정 계좌에서 공통으로 입금이 됐던 흔적이 발견된다면 발뺌을 해도 소용이 없다.

작전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알려졌다면 그 작전은 실패한 작전이거나 막바지에 물량을 털어내려는 속임수다. 혹시라도 작전주라는 소문을 믿고 뛰어들었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당신이 투자상담사라면 작전에 끼워주겠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주가를 끌어올리기는 오히려 쉽다. 작전의 핵심은 끌어올린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한방에 물량을 털어내느냐다. 작전 주도세력 이른바 주포가 아닌 이상, 물량을 뒤집어 쓰고 하한가를 두들겨 맞는 총알받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여러 차례 작전 세력들 인터뷰도 했고 작전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만나봤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작전은 실패한다. 인위적으로 주가를 움직이려는 시도는 모두 불법이다. 작전주라는 의심이 들면 아예 손을 떼는 게 좋다.

참고 : 작전세력을 만나다. (이정환닷컴)
참고 : “한탕만 크게 해먹고 손 털자.” (이정환닷컴)
참고 : 작전 시나리오 이렇게 짠다. (이정환닷컴)

증권가의 작전 세력들 / 허윤호 지음 / 하라출판 펴냄 /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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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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