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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도청을 떠나지 않았을까.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19, 2007

기록과 증언을 종합해보면 1980년 5월 27일, 광주 금남로 전라남도 도청에는 157명의 시민군이 남아 있었다. 질 게 뻔한 싸움. 그야말로 개 죽음이 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도청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와 맞서면서 군인들을 기다렸고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그들이 왜 그렇게 무의미한 죽음을 자처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섰고 병원으로 부상자들을 실어날랐다. 죽은 사람들의 관에는 태극기가 덮였다. 자동차 공장과 예비군 무기 창고가 털렸지만 강도나 강간 등 다른 불법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소금물에 적신 주먹밥을 시민군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수십대의 시내버스와 택시들이 금남로 광장에 몰려들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폭도라면 그들 모두가 폭도였고 폭동이라면 도시 전체가 폭동이었다.

5월 21일, 계엄군이 잠깐 물러난 뒤 도청 앞 광장에는 10만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군인들이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는 극단의 상황.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야 했던 사람들. 간첩과 폭도들에게 점령당했다고 알려진 버림 받은 도시. 그 도시에 고립된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을 이 영화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해 5월을 충실히 재현하는데 그칠 뿐 제대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당신이 그해 5월 광주에 있었다면 당신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계엄군이 다시 진격해 왔던 5월 27일 저녁, 많은 광주 사람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드려 가두방송을 들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가 광주를 지키겠습니다.” 콩 볶는 듯한 총 소리가 밤새 울려퍼졌고 사람들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탱크를 앞세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는 민간인들에게 총까지 쏘아 댔다. 그런데도 방구석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니.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구차하단 말인가.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진격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도청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남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폭도로 내몰릴 게 뻔했고 아무 의미 없는 개죽음이 될 게 너무나도 뻔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것이냐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울 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항복을 했으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목숨을 던져 싸우지 않으면 이 싸움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이미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미 죽은 그들을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신문과 방송에서는 광주가 북쪽의 사주를 받은 무장 폭도들에게 점령 당했다고 떠들어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라에서 보낸 군인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 처절한 싸움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미 죽은 그들이 폭도가 아니었음을 항변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그들 모두가 폭도라는 걸 입증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돌아온 군인들이 아무도 없는 텅 빈 도청을 접수했다면 27년이 지난 지금 광주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폭동은 폭동으로 끝나고 광주는 평화를 되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평화는 결국 폭도들의 죽음과 폭도들의 패배가 가져온 평화다. 이미 죽은 사람들을 폭도로 내다팔고 산 사람들은 평화를 얻는다?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은 그 비겁한 타협을 거부했다. 오히려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때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고아들과 갈 곳 없는 부랑자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돌봐야 할 가족이 없는 우리가 남을테니 당신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는 증언도 남아있다. 그들은 누군가가 도청에 남아 군인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무기를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절대 권력에 맞서 그들이 옳다는 걸 입증할 방법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미국 웬트워스 대학의 조지 카피아피카스 교수는 1999년 5·18 학술강연회에서 이른바 ‘광주 코뮨’을 설명하기 위해 ‘에로스 효과’라는 개념을 도입한 바 있다.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수백만의 일상적인 민중들이 스스로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직관적으로 믿으면서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 들어온다. 이때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들이 부정됨과 동시에 보편적인 인류적 관심이 전면화 된다. 이런 에로스 효과는 단순히 마음의 행위도 아니고 의식적 요소에 의해 의도되는 것일 수도 없다. 오히려 에로스 효과는 수백만의 일상적인 민중이 역사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는 만큼 스스로 당당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민중적 혁명운동들을 포함한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그들의 피를 양분으로 받아들여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드려 있을 때 거리로 나가 당당하게 탱크와 맞섰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고 결국 이겼다. 언젠가 결국 민주화는 됐겠지만 부당한 권력에 맞서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던 1980년 5월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민주화는 훨씬 고되고 더뎠을지도 모른다. 그들 대부분은 운동권 대학생들도 아니었고 사회 변혁을 꿈꾸던 지식인도 아니었다. 산업화와 고도 성장이 절정을 이루던 1980년 초반,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도시 빈민들이었다.

참고 : 윤상원과 광주민중항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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