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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언론은 왜 침묵할까.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30, 2007

삼성이 차명계좌를 이용,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의혹을 파헤치기 보다는 일부 언론은 오히려 삼성을 대변하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핵폭탄급 양심선언은 ‘논란’이나 ‘공방’으로 소개되다가 이틀 만에 지면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삼성은 전현직 임직원들의 이름을 빌려 차명계좌를 만든 뒤 이를 이용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보관하거나 자금세탁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이 공범 역할을 했고 금융감독원 등 감독기관도 이를 묵인한 의혹이 있다. 김 변호사는 이런 계좌가 수천개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인과 한겨레21의 단독 보도였다고는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사안이고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을 돌아보면 일간지들에 미치는 삼성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삼성은 29일 아침 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부터 주요 언론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사태의 조기 진화와 수습에 나섰다.

29일 석간을 포함, 전국 단위 일간지에 실린 관련 기사는 모두 26건, 한겨레가 12건이고 문화일보가 2건, 나머지 12개 일간지들은 모두 1건씩이고 머니투데이 등 3개 경제지들은 아예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가 1면과 3, 4, 5, 6, 7면에 걸쳐 기사를 내보냈고,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문화일보가 2면에 기사를 내보낸 반면, 나머지 일간지들은 사회면 기사로 반영했다.

매일경제는 어처구니없게도 “진실게임 공방에 날 새는 한국 사회”라는 제목을 달았고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등은 “논란”, 서울경제는 “공방”이라고 소개했다. 서울신문은 “(김 변호사가)퇴직 임원에 대한 3년 예우기간이 지난 9월로 끝나자 부인 명의의 협박 편지를 회사로 세 차례나 보내왔다”는 삼성의 주장을 비중있게 싣기도 했다.

한겨레가 충분히 지적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김 변호사의 계좌에 50억원이 들어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돈이 삼성이나 삼성 고위 임원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대응 방식도 수상쩍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딱 여기까지다. 이런 주장이 있었고 이런 반박이 있었다, 그리고 끝.

아마도 삼성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된 비자금보다 한때 삼성의 최고위 임원이었던 그가 삼성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2003년 대선자금 사건 때 경영진에 반발했고 부사장 승급 제안을 받았지만 “사육 당하는 것 같아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삼성 입사를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김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초라한 뒷모습이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말한다. 솔직히 그곳에서 나중에는 대우를 잘 받았다. 호의호식했고, 사치도 많이 해봤다. 나는 늙어서 아내 손 잡고 산책하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가정을 잃었다. 검사 때는 애들이 나를 존경했지만, 이제는 안 한다. 그리고 그곳을 거치면서 양심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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