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김규항의 냉소를 비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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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김규항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그가 내세운 다음 같은 말도 안되는 논리 때문이다.

1. 탄핵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다.
2. 노무현은 탄핵안이 가결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즉, 탄핵을 스스로 선택했다.
3. 탄핵 사태와 민중의 삶은 별 관련이 없다.

참고 : 탄핵,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 (김규항의 블로그)

좌파 전체로 묶는건 무리가 있지만 좌파 가운데 이런 엉터리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다. 이건 고약한 음모론이다.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진중권이 모처럼 잘 지적했듯이 이미 탄핵이 가결된 이상, 이것은 더 이상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근간에 관한 문제다. 대의(代議)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데 지금 현실이 민중의 삶과 어떻게 무관할 수 있는가.

나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게 이번 총선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이 기가막힌 상황에서 표 계산을 하고 앉아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상황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것을 그냥 보고 넘어갈 수는 없다.

참고 : 김규항의 억지와 헛소리. (이정환닷컴)

김규항의 논리를 풀어쓰면 이렇다.

1. 어처구니 없이 열린우리당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사로 둔갑해 순교자의 흉내를 내는 꼴을 지켜볼 수 없다.
2. 노동자와 농민이 죽어갈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시민들이 열린우리당 표 몰아주러 거리로 뛰쳐나가는 꼴이 야속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맥락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박기범 같은 사람처럼 “사실 노무현 정권은 탄핵받아 마땅한 정권이었다”는 비판은 지금 상황에서 본질을 흐릴뿐이다. 진보진영 사람들은 노무현이 진보도 개혁 세력도 아니라고 보겠지만 노무현을 탄핵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그나마 진보와 개혁을 의미한다. 탄핵에 이른 지금 상황도 노무현이 그 어떤 대통령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동지는 아닐 수 있겠지만 적어도 노무현이나 진보진영이나 지금 상황에서 적은 동일할 수 있다. 동일한 적을 놓고 부분적이나마 연대가 가능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거리에 뛰쳐 나온 사람들이 모두 노사모거나 이른바 노빠, 또는 단순한 열린우리당 지지자일거라고 보는건 굉장한 착각이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 사람들 상당수는 보다 나은 세상을 바라고 기꺼이 변화의 움직임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을 잠재적인 민주노동당 지지자들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 아닐까.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이 죽어갈 때 꿈쩍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마침내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이 좀더 성장하고 성취의 경험이 쌓여가고 참여의 문화가 자리잡으면 민주노동당이 꿈꾸던 세상을 좀더 앞당길 수 있을거라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게 그 시작이다. 당장 눈앞의 4월 총선에 목을 매지 않는다면 멀리 내다볼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에게 지금은 큰 기회다. 냉소할 때가 아니라 가장 먼저 앞에 나서야 한다. 다들 가락이 있는 사람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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