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 회사를 살려낸 뚝심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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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로라가 1983년 세계 최초로 내놓은 다이나택이라는 휴대전화는 그야말로 벽돌 같은 디자인이었다. 가로 4.5cm, 세로 22.8cm에 두께도 12.7cm나 됐다. 모토로라는 그 뒤로도 숱하게 많은 휴대전화의 신기록을 만들어 냈다. 1989년에는 세계 최초의 플립형 휴대전화 마이크로택을 내놓았고 1996년에는 휴대전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스타택을 내놓았다.

휴대전화가 부유층의 상징이던 시절, 모토로라는 1kg도 채 안 되는 스타택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스타택은 세계 최초의 폴더형 휴대전화였고 세계 최초의 진동 기능, 세계 최초의 문자 메시지 기능 등 고정 관념을 깨는 첨단 기술의 결정체였다. 폴더형 휴대전화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라는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스타택은 세계적으로 7500만대 이상 팔렸지만 문제는 스타택의 뒤를 이을 후속 모델을 제때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때 60%를 넘기도 했던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추락해 1998년에는 핀란드의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2000년에는 급기야 시장 점유율이 10% 초반까지 떨어진다.

모토로라는 2001년 처음 39억달러의 적자를 낸데 이어 2002년에는 적자가 64억달러로 불어났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함께 5만명 이상 종업원을 잘라내기도 했지만 위기는 오래 지속됐다. 주가는 2000년 40달러에서 2003년 초 7달러까지 떨어졌다. 애널리스트들은 휴대전화 부문을 매각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회사를 살려낼 아이디어를 찾아라.

“모토로라는 그때 엄마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친숙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구식이었죠. 휴대전화의 첨단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회사 분위기도 가라앉을 대로 앉아있었죠. 시장 점유율이 끝없이 떨어졌고 주가도 바닥을 기었으니까요.” 모토로라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짐 윅스의 이야기다.

2003년 가을, 모토로라 디자인팀에게는 회사를 살려낼 아이디어를 찾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수많은 브레인스토밍을 거친 끝에 채택된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초슬림 폴더형 휴대전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이름은 ‘날씬한 조개(thin clam)’. 모토로라 내부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은 다른 폴더형 휴대전화의 절반 밖에 안 되는 1cm 두께의 휴대전화 모형을 놓고 수많은 회의를 거쳤다. 기능과 두께 가운데 어느 것을 희생할 것이냐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발신자 번호를 표시하는 외부 액정을 없애자는 아이디어가 잠깐 설득력을 얻기도 했지만 이내 묵살됐다.

경영진은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보안에 신경을 쓰고 최대한 개발 시기를 앞당기라고 거듭 재촉했다. 외부 액정은 물론이고 디지털 카메라와 스피커, MP3 플레이어, 3차원 그래픽 등을 모두 포함하고 무엇보다도 배터리 용량까지 충분해야 했다. 첨단 기능을 모두 포함하면서 두께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두께를 줄이기 위해 몇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다. 먼저 휴대전화 바깥에 달려있던 안테나를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회로 기판 뒤쪽에 있던 배터리는 앞쪽에 배치했다. 그렇게 두께를 줄이고 나니 문제는 너비였다. 손 안에 쏙 들어가려면 너비가 4.9cm를 넘으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도저히 5.3cm 미만으로 줄일 수가 없었다.

윅스는 두께를 늘리기보다는 차라리 너비를 늘리는 쪽을 선택했다. 1cm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5.3cm 너비로도 손에 쥐었을 때 불편하지 않을만한 디자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게 2004년 7월의 일이다. 두께 1.36cm, 면도날처럼 얇다는 의미에서 레이저로 이름을 정했다.

레이저는 처음 계획했던 1cm보다 두꺼웠지만 그때까지 나온 가장 얇은 플립형 휴대전화보다 더 얇았다. 두께를 줄이기 위해 특별히 항공모함을 만들 때 쓰는 알루미늄 합금을 썼다. 제작 단가는 훨씬 비싸지만 얇으면서도 플라스틱보다 18배나 단단한 소재였다. 키패드는 니켈을 도금한 구리 합금을 썼고 외부 액정에는 강화 유리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휴대전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레이저는 출시 이후 2년 동안 5천만대 이상 팔렸다. 2005년 모토로라의 시장 점유율은 18.6%까지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침체 돼 있던 회사 분위기는 다시 살아났다. 모토로라 사람들은 농담 삼아 “애플의 아이팟보다 모토로라의 레이저가 훨씬 더 많이 팔린다”고 말하곤 했다.

1.36cm, 세상에서 가장 얇은 휴대전화.

레이저의 놀랄만한 성공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때로는 비밀주의가 효과적일 때도 있다. 모토로라는 디자인팀을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시켰다. 세상을 뒤흔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그래서 가능했다.

둘째, 연구결과가 최선은 아니다. 휴대전화의 너비가 4.9cm라는 건 상식이었지만 디자인팀은 이를 무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관을 따랐다.

셋째, 틈새 상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도 있다. 레이저는 블록버스터로 계획된 제품이 아니었다.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고가 제품이었는데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낮아졌고 99달러에 팔 수 있게 됐다.

넷째, 마감을 어기는 게 반드시 실패는 아니다. 레이저 디자인팀은 마감 시한인 2004년 2월을 넘겨 여름까지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완벽한 디자인은 마감을 제때 지키는 것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모토로라가 페블에 3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를 장착한 것은 이 회사의 디자인 철학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2005년 12월에 출시된 페블은 조약돌 모양의 매끈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휴대전화다. “우리는 날마다 0.01cm를 놓고 싸웠습니다. 두께를 줄이다 보니 결국 카메라를 넣을 공간이 없었어요.” 페블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게일 맥윌리엄의 이야기다.

“우리는 개발 과정에서의 소비자 조사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윅스는 디자이너들에게 확신과 배짱을 가지라고 말하곤 했죠. 휴대전화마다 수백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를 집어넣는 게 일반화 돼 있는데 우리는 과감히 30만 화소로 줄였습니다. 디자인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레이저가 페라리라면 페블은 폭스바겐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저의 날렵한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두는 한편 감성적인 소비자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페블은 다른 어떤 휴대전화와도 달랐다. 뚜껑을 밀어내리는 방식인데 처음 손에 쥐는 사람이라면 뚜껑을 열지 못해 쩔쩔 맬 수도 있다.

모토로라는 지난해 9월 레이저의 후속 모델인 크레이저를 내놓았지만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디자인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레이저와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식상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슬리버와 제트, 레이저스퀘어 등의 후속 모델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대부분 레이저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모토로라는 미국 시카고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중국, 영국 등에 디자인 센터를 두고 현지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오리지널 스타택을 현대적 스타일로 재해석한 스타택 3는 우리나라 디자인 센터에서 개발한 모델이다. 디자인팀에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와 인류학자 등도 포함돼 있다.

윅스는 디자이너들에게 이른바 3미터 원칙을 강조한다. 3미터 바깥에서도 모토로라 제품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윅스의 디자인팀은 1년에 하나씩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직관적이면서도 편리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게 윅스의 디자인 원칙이다.

윅스는 일본 도쿄 니혼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소니에 입사에 핸드헬드 카메라를 개발하는데 참여했다. 모토로라 휴대전화에서 이른바 젠 스타일의 동양적인 곡선이 발견되는 것도 그의 이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협업을 강조하는 독특한 조직 문화도 소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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