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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일본식 디자인 경영이 만든 축약의 미학.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25, 2007

“언젠가 TV로 축구 경기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카메라가 경기장 구석에 놓인 TV를 잠깐 비췄는데 상표를 보지 않고도 금방 알 수 있었어요. 소니 브라비아 시리즈였죠. 잠깐 보기만 해도 소니라는 걸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소니를 소니답게 하는 것. 그걸 우리는 소니 디자인이라고 부릅니다.” 34년 동안 소니의 디자인을 맡아왔던 구로키 야스오의 이야기다.

1932년생이니까 올해 75세. 1960년에 입사해 소니의 성장을 주도하고 한때 최고 경영자 자리까지 올랐던 그는 지금 구로키 오피스의 소장으로 있다. 입사 6개월 만에 지금의 소니 로고를 만든 것도 바로 그다. 워크맨을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니의 히트 제품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를 미스터 워크맨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봐, 그거 어디선가 본 거 같지 않아?’ 이런 말이 나오는 디자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어디선가 훔쳐온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설령 우리가 먼저 개발했는데 다른 회사에서 먼저 제품을 내놓았다면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포기합니다. 철저하게 새로울 것.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를 것. 이런 원칙이 소니를 소니답게 하는 것이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소니만의 무엇.

소니는 디자인을 경영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은 많지 않은 회사 가운데 하나다. 이를테면 구로키가 CEO로 있던 무렵 디자인센터는 아키오 모리타 회장실의 바로 아래층에 있었다.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면 모리타 회장이 직접 아래층으로 내려오곤 했다. 이를 두고 구로키는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제품은 발이 없지만 회장님은 있으니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디자인센터에서는 이를 목업으로 만들었다. 간단한 스케치를 던져놓고 끝나는 게아니라 직접 실물에 가까운 모형을 만들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 사이의 충돌이 줄어들고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게 됐다. 그래서 이를 크리에이티브 리포트라고 불렀다.

소니는 또 트리오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조직 운영을 도입하기도 했다. 직책과 경력, 업무 분야와 무관하게 디자이너를 세 명씩 한 팀을 짜도록 했다. 한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두 명이 이를 검토하고 의견을 내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채택된 아이디어는 한 차례 결재를 받고 바로 최고 경영자에게 올라오게 된다.

크리에이티브 리포트와 트리오 시스템은 소니의 디자인 경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기술 장벽을 넘어 도발적인 상상력을 수용하는 문화, 자유로운 토론을 장려하는 문화. 모리타 회장은 “침묵은 비겁하다”고 말하곤 했다. 강제로라도 의견을 내도록 했고 그 모든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의견 없는 만장일치는 만장일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크리에이티브 리포트를 발표할 때면 경영진은 물론이고 엔지니어를 비롯해 판매 부서까지 모여들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기술과 판매, 경영 전반에 아이디어를 넓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언젠가 디자인센터의 디렉터 가운데 한 사람이 사표를 냈다. 회장과 자신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이유였다. 모리타 회장은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내 생각이 똑같다면 우리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된다. 당신이 내게 필요한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니의 기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구로키는 ‘소니 스타일을 훔쳐라’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으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고 효율도 오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과 생각이 너무 달라서 어울리기 힘든 사람과도 함께 일해야 한다. 기획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려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하는데 의미가 있다.”

소니가 세계 시장에 처음 이름을 알린 때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던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디오가 전자레인지만 하던 무렵, 소니는 들고 다닐 수 있는 라디오를 만든다는 무모한 아이디어에 도전했다.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환영하는 소니의 독특한 기업 문화 덕분에 가능한 시도였다.

소니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린 워크맨도 마찬가지다. 1979년, 소니가 워크맨을 내놓을 때만 해도 녹음기는 차라리 가전제품에 가까웠다. 들고 다니는 녹음 재생장치라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제품에 구현하기까지는 험난한 도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팔린 워크맨은 종류만 200여종, 세계적으로 3억개 이상이다.

소니는 이밖에도 1984년에는 이동식 CD플레이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1989년에는 손바닥 크기의 캠코더, 핸디캠을 역시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경쟁업체들이 소니를 흉내 내기 시작했지만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아이디어는 흉내낼 수 있었지만 기술이 뒤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니의 디자인 철학은 흔히 ‘축약의 미학’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축약이란 단순히 크기를 줄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은 크기에서도 품질과 디자인, 사용자 편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버튼 크기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버튼을 누르는 감촉과 반작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소니의 경쟁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토론 문화.

최근에 소니의 디자인 철학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이오 VGX-TP1이다. 동그란 로봇 청소기처럼 생긴 이 혁신적인 디자인의 PC는 아이들 공부방이 아니라 거실에 어울리도록 디자인 됐다. 대형 LCD-TV나 DVD 플레이어와 연결할 수 있고 무선 키보드나 리모컨으로 인터넷 검색을 할 수도 있다. MP3파일을 오디오 시스템에 연결해 재생할 수도 있다.

“처음 목업을 봤을 때 한눈에 반했습니다. 과연 이걸 만들 수 있을까. 이틀 밤낮을 고민한 끝에 결국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각형의 메인보드를 둥그렇게 만드는 것부터 부딪혀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죠. 매끈한 디자인을 유지하려면 수많은 배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도 고민거리였고요.” 소니 디자인센터의 아트 디렉터, 오사무 마사미쯔의 이야기다.

말끔한 흰색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언뜻 애플의 아이팟을 연상하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니답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지저분한 배선은 모두 뒷면으로 옮겨갔고 USB 포트와 메모리 카드 리더 등은 모두 슬라이딩 커버 안으로 들어갔다. DVD 드라이브 슬롯 역시 원통형 디자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데스크톱 PC와 노트북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오 타입L 역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데스크톱 PC처럼 쓰면서도 들고 다닐 수 있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어느 곳에 놓아도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컨셉이었다. 기획 단계에서는 반대 의견이 끊이지 않았지만 일단 목업을 보고 나자 다들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디자인센터의 시미즈 미노루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데스크톱 PC도 노트북도 아닌 완벽하게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데스크톱 PC 같다거나 노트북 같다고 말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1년 반 동안 시행착오를 거쳤죠. 결국 투명 프레임을 써서 주변 인테리어와 어울리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습니다.”

소니가 최근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제품은 역시 브라비아 시리즈다. 사각형의 LCD-TV에 디자인을 불어넣을 여지가 있을까. 가뜩이나 디자인이 애플에 뒤쳐진다는 비난을 의식한 소니는 디자인 공모라는 모험을 감행한다. 막강한 디자인센터를 두고 외부에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위기의식 못지않게 자존심을 건 승부수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소니 디자인센터의 니이츠 타쿠야를 따라 잡을 아이디어가 없었다. 이른바 플로팅 디자인, 테두리 바깥에 투명 유리판을 받쳐 TV가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빨간색 테두리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니이츠는 “거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다가 TV와 창은 본질적으로 같다는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화면 이외의 부분을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TV는 이미 디자인의 영역을 떠났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던 어느날 무심코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패널을 넓히면 투명한 유리 위에 화면이 떠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작게 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던 거죠.”

소니 디자인센터에는 225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이들은 해마다 2천건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는다. 소니의 디자인 철학은 첫째, 독창적일 것, 둘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할 것, 셋째, 기능적일 것, 넷째, 사용환경을 고려할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워크맨 시리즈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유진 모리사와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가끔 소니답다는 것이 뭔가를 놓고 이야기합니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려면 어려운데 강력한 열망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들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강력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열망이 소니다운 디자인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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