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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이틀처럼… 나도 점심형 인간 돼 볼까.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 2007

아침형 인간이 열풍이더니 이제는 점심형 인간까지 나왔다. 이래저래 시간에 쫓기고 그나마 그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직장인들은 고달프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란 대개 비슷하다. 12시를 10분쯤 남겨놓고 슬슬 긴장이 풀어지다가 누군가 “식사하러 가죠” 하는 소리에 어슬렁거리며 일어나 붐비는 엘리베이터를 몇 차례 보내고 내려오면 어느 식당으로 갈 것인지 뭘 먹을 것인지를 놓고 한참 헤매야 한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앉으면 시덥잖은 토크쇼가 시작된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잡다한 농담은 마냥 길어지고 누군가가 “일어날까요”라고 할 때까지 마냥 퍼질러 앉아있게 된다. 가뜩이나 껄끄러운 직장 상사라도 함께 하는 식사 자리라면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다. 점심 먹고 담배 한 대 태우고 올라와 의자에 눌러앉아 기지개를 켜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흔히 오후 시간은 오전보다 더 길고 지루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축 늘어져 쉬는 게 최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뭉개고 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런가 하면 단순하게 먹는 걸로 점심시간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올라와 곧바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이라면 그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1년이면 265시간이나 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한 시간이 하루의 나머지 절반을 결정짓는다는데 있다. 직장인들에게 이 한 시간은 일탈이 허용되는 시간이다. 1시까지 돌아와 자리에 앉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해도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한때 아침형 인간 열풍에 이어 최근 점심형 인간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일단은 우르르 몰려가서 먹는 점심을 피할 필요가 있다. 부서 회식을 점심 때마다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두 번의 하루를 만드는 점심형 인간의 첫 번째 원칙은 최대한 빨리 가볍게 먹고 들어와 남는 시간을 활용할 것.

하루 20분씩 2주일이면 3시간 20분, 이 정도면 책을 한 권씩 읽을 수도 있고 달리기를 하면 3km씩, 한 달에 60km를 달릴 수 있다. 차라리 작정하고 20분씩 규칙적으로 낮잠을 쿨쿨 자고 나면 하루를 둘로 나눠 이틀처럼 보낼 수도 있다. 명상을 하거나 짧게 요가를 할 수도 있다. 주변에 공원이 있다면 간단히 산책을 하는 것도 좋다.

사무실이 높은 층에 있다면 아예 걸어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반복하면 훌륭한 운동이 된다. 가까운 곳에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도 좋고 여건만 된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영을 해도 좋다. 식사를 좀 먼 곳에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거리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된다.

우리는 근무 중에 내내 좌뇌를 혹사하게 된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좌뇌를 쉬게 하고 우뇌를 움직이게 할 필요도 있다. 편의점에 들러 새로 나온 과자나 음료수 등의 포장을 살펴보거나 맛을 상상해 보는 것도 우뇌를 깨우는 방법이다. 담배 한 갑을 사더라도 구내 매점이 아니라 이왕이면 몇 블록 떨어진 편의점까지 걸어가 보자.

점심시간에 신을 수 있는 조깅화나 워킹 슈즈를 마련해 두는 것도 좋다. 구두를 싣고 편하게 걷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산책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식사하고 돌아와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루에 한번 정도는 굳은 근육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자투리 시간에 밀린 공부를 하는 것도 좋다. 점심을 굶으면서 학원 강좌를 듣는 사람들도 최근에는 많아졌다. 아침 잠이 많아 출근하기도 바쁜 사람, 저녁에 온갖 약속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점심시간이 유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은 회사 차원에서 어학강좌를 개설하는 경우도 있다.

내친 김에 자격증 시험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평생 직장이 아니라고 본다면 세컨드 잡의 기회를 마련해 두라는 이야기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좋고 노무사나 손해사정인 시험을 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도가 높아진다. 짜투리 시간 20분이면 퇴근 이후 1시간 이상의 진도를 뽑을 수 있다.

요즘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스포츠 안마를 받거나 족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주는 곳도 있다. 점심시간에 소개팅이나 맞선을 본다는 사람도 있다. 시간을 내기 나름이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시간 끌지 않고 바로 일어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마음에 들면 주말에 따로 약속을 잡으면 된다.

‘점심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점심형 인간의 사례가 나온다. 이를테면 15분 동안 책 한권 읽기. 목차를 보면서 중요한 부분만 넘겨가며 읽으라는 것이다. 15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건너 뛰면서 핵심만 건져낸다. 일주일에 5권씩 한 달이면 20권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처럼 점심시간을 인맥 관리에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리해야 할 사람들을 정해놓고 비정기적으로 안부전화를 거는 것이다.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미리 약속을 하고 직접 찾아가거나 찾아오도록 해서 점심을 같이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핵심은 늘 보는 사람들과 뻔한 점심을 먹지 말라는 것.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간단한 스터디나 토론 모임을 만들 수도 있고 자투리 시간에 동아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외부 인사도 좋고 다른 부서 사람도 좋다.

전자우편을 활용하는 것도 훌륭한 인맥관리다. 아침에 받는 전자우편은 스팸도 많고 제대로 읽어볼 여유도 없지만 점심시간 이후에 들어오는 전자우편은 아무래도 좀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특별한 용건이 없다면 인터넷 유머를 옮겨 담는 것도 좋지만 간단한 근황이나 메모를 덧붙이고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최근 한 온라인 취업사이트가 직장인들 2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3.4%가 “점심형 인간이 될 의향이 있다”고 밝혔지만 34.4%는 “일부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대답했고 26.8%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 37.1%는 “휴식을 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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