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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닮은 엔진, 할리데이비슨의 디자인 원칙.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12, 2007

두둥 두두둥…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매력은 뭐니 뭐니해도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를 닮은 거친 배기음이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은 언뜻 말 발굽 소리 같기도 하고 헬리콥터 소리 같기도 한 이 독특한 배기음과 진동 때문에 할리에 빠져든다. 할리데이비슨의 디자인 철학은 디자인(Look) 뿐만 아니라 소리(Sound)와 느낌(Feel)까지 모두 만족시킬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할리데이비슨이 2001년 6월, V-로드 모델을 처음 공개했을 때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의 반응은 비난과 찬사로 크게 엇갈렸다. 지금까지 나왔던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사이클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 창업 이래 100년 가까이 공랭식 엔진을 고집해왔는데 이 새 오토바이는 놀랍게도 수랭식 엔진을 채택했다. 공랭식이란 바람으로 엔진을 식힌다는 말이고 수랭식이란 물로 식힌다는 말이다.

할리 마니아들이 공랭식 엔진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수랭식보다 설계가 훨씬 간단하고 효율적이다. 훨씬 더 적은 부품을 쓰기 때문에 고장 날 위험도 더 적다. 둘째, 모터 사이클이라면 흔히 떠올리기 마련인 고전적인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라디에이터나 부동액이 필요 없기 때문에 무게가 줄어들어 급회전할 때도 핸들이 가볍다.

할리 마니아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할리데이비슨은 해마다 최대의 매출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두 개의 실린더가 45도 각도를 이루는 이른바 V-트윈 공랭식 엔진은 독특한 배기음과 진동, 저속에서도 강력한 회전력을 내는 비결로 꼽히기도 했다. 이를 흉내 내는 경쟁업체들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벌이기도 했을 정도다. 100년 가까이 이어온 이 전통적인 디자인을 할리데이비슨은 왜 포기했을까.

“힘 좋은 엔진은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처럼 저속에서 강력한 회전력을 내는 엔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속도를 높이면서도 저속에서 회전력을 잃지 않는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할리 스타일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죠. 할리의 독특한 배기음과 진동을 잃는다면 그건 더 이상 할리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디자인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윌리 데이비슨의 이야기다. 그는 창업자인 아더 데이비슨의 손자다.

사실 과거의 할리는 빠르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덩치가 크기도 했고 힘은 좋았지만 공랭식 엔진이라 속도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수랭식 레볼루션 엔진을 도입한 V-로드 시리즈는 할리의 고전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살리면서 속도를 두 배 가까이 높였다. 8500rpm에서 최고 출력이 115마력까지, 7000rpm에서 최대 회전력이 100Nm까지 나왔다. 최고 속도도 217km/h까지 늘어났다.

설계 과정에서 부딪힌 가장 큰 문제는 할리만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속도에 우선해서 엔진의 부피가 크게 늘어나지 않아야 했고 할리의 가장 큰 매력인 배기음과 진동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수랭식으로 바뀌면서 빼놓을 수 없게 된 라디에이터도 골치거리였다. 자리 배치를 바꿔가면서 수많은 컴퓨터 그래픽과 진흙 모형이 만들어졌지만 만족할 만한 스타일을 얻기까지 꼬박 5년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진흙 모형을 만들어 놓고 돌아볼 때마다 우리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고 그때마다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5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기술에 디자인을 담지 않고 디자인에 기술을 담아냅니다. 엄청난 시간이 소모됐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디자인 프로세스입니다. 결국 V-로드는 다른 모델과 전혀 겹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할리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따르려면 엔진을 통째로 바깥에 노출시키되 최대의 성능을 발휘해야 하고 또 완벽하게 아름다워야 했다. 이를 위해 연료탱크를 시트 아래로 옮기고 연료탱크가 있던 자리에는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는 에어 인테이크를 놓기로 했다. 라디에이터는 핸들 바로 뒤쪽에 자리 잡았다. 38도로 꺾인 핸들 축은 차체를 훨씬 더 길고 낮아 보이게 만들었다. 딱 봐도 할리의 후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할리데이비슨은 전통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성능을 개선하면서도 디자인을 우선했고 이에 맞춰 설계를 변경하는 방식이었다. 공랭식이냐 수랭식이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이느냐, 어떻게 들리느냐, 어떤 느낌을 주느냐가 중요했다. 수랭식인데도 공랭식처럼 보이려고 실린더에 홈을 새기기도 했고 S자 형태로 꺾인 배기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 고무관을 통해 공기를 불어넣는 공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물론 할리 마니아들 가운데 일부는 V-로드의 배기음이나 진동이 전통적인 할리에 못 미친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V-로드의 디자인이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할리보다 더 할리스럽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매끈하게 빠진 알루미늄 프레임이나 180㎜의 광폭 타이어는 오히려 더 날렵하고 강인한 인상을 준다. 먼지를 일으키며 서부 사막을 내닫던 과거 할리를 그대로 빼 닮았으면서도 훨씬 세련된 멋의 극치를 달린다.

“엔진을 감싸고 돌면서 배기 파이프로 어어지는 유연한 곡선은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릅답습니다. 커피숍이나 술집 앞에 잠깐 주차할 때, 또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을 때면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의 할리가 단순히 ‘아, 멋지다’는 정도의 시선이었다면 V-로드는 ‘저 멋진 놈은 도대체 무엇이지? 한번이라도 타봤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호기심과 선망의 시선입니다.” 할리데이비슨 마케팅 매니저 스티브 언쇼의 이야기다.

물론 할리데이비슨이 늘 지금처럼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2만여대의 할리를 납품하기도 했고 한때 미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70%를 웃돌았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됐고 1960년대 들어 일본의 혼다가 경량급 오토바이를 들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할리데이비슨의 급격한 몰락이 시작됐다. 1965년에는 점유율이 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주목할 부분은 할리데이비슨이 몰락하는 동안 모터 사이클 시장 규모는 오히려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1960년만 해도 1년에 40만대 정도 팔리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1970년대 들어서는 400만대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할리는 품질은 좋지만 불량률이 높다는 불만이 많았고 심지어 “할리를 사려거든 2대를 한꺼번에 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기도 했다.

할리데이비슨은 결국 1969년, AMF라는 회사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가 몇 차례 도산 위기를 겪다가 1981년 가까스로 독립에 성공한다. 그 뒤 일본식 경영기업을 도입해 회생에 성공했고 할리데이비슨 드라이버 동호회인 HOG(할리 오너스 그룹)의 지원에 힘입어 재기의 발판을 다지게 된다. 1993년에는 주문이 밀려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가 됐다. 10% 이상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일본 업체들이 낮은 가격에 높은 성능으로 승부를 걸어올 때 할리데이비슨은 높은 가격에 오히려 낮은 성능으로 반격에 나섰다. 속도 보다는 강한 회전력, 낮고 묵직한 배기음과 진동, 이에 어울리는 남성적인 디자인이 할리데이비슨의 경쟁력이었다. 웬만한 중형차 못지 않은 가격이지만 원초적인 힘과 자유는 할리만의 매력이었다. 그리고 이제 V-로드는 과거의 한계를 넘어 강한 힘에 스피드까지 겸비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출시된 2007년식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가운데 가장 가벼운 모델은 스포스터 50주년 기념모델로 253.6kg, 가장 무거운 모델은 울트라 클래식 일렉트라 글라이드로 370kg이다. 배기량이 가장 낮은 것은 에볼루션XL로 883cc, 가장 높은 것은 트윈캠96으로 1584cc에 이른다.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 가장 저렴한 스포스터883은 1100만원, 가장 비싼 울트라클래식일렉트라글라이드는 3530만원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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