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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딸에게 고소를 당하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6, 2006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영씨가 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나를 불구속 기소했고 다음주에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이 보낸 공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간도인 특설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항일군을 토벌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이정환은 공소외 류연산의 글에 관해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박정희의 유족들이 제기할 수 있는 반론을 병기하지 않아 일반독자들이 보았을 경우 류연산의 주장이 설득력 있고 확고한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인식될 개연성이 있도록 류연산의 글을 그대로 게재하여, 그 무렵 불특정 다수인에게 발행 배포되게 하고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인 박정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류연산씨는 중국 길림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이다. 그가 2004년에 쓴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는 박 전 대통령이 간도인 특설부대에 입대해 1939년 8월 24일 대사하 전투에 참여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박근영씨는 지난해 4월 이 책을 낸 아이필드 출판사의 유연식 사장을 고소했고 검찰은 지난해 12월 유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류연산씨가 월간 ‘말’에 이 사건과 관련해 원고를 보내온 때는 지난해 7월, 나는 어쩌다가 그무렵 임시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류씨는 이 원고에서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와 관련한 몇가지 사실을 추가로 밝혔다. 그 원고는 월간 ‘말’ 8월호에 실렸고 박근영은 지난해 12월 월간 ‘말’을 고소했다. 그리고 올해 12월 검찰은 나와 이정무, 이종태 선배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박 전 대통령이 간도인 특설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항일군을 토벌한 사실이 없다고 단정짓고 있다. 허위사실을 기록해서 사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공소 취지다. 내가 쓴 글은 아니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류씨의 글을 잡지에 실어준 것만으로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이야기다.

검찰과 박씨가 내세우는 근거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간도특설대 명단에 박 전 대통령이 없다는 것. 둘째, 1939년에는 문경소학교에 재직중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논리와 근거도 많다. 첫째, 간도특설대의 명단은 아직 10% 밖에 확인되지 않았고 둘째, 1939년 가을 박 전 대통령이 여러차례 만주에 다녀갔다는 정황과 증언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 전 대통령이 1940년 신경군관학교에 자원입대했고 1944년 무렵 보병 8연대에 복무했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에 기록돼 있다. 박 전 대통령 본인도 재직시절에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강조하곤 했다. 역사학자들은 보병 8연대와 간도특설대가 정확히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고 있다.

명예훼손의 여부의 핵심은 결국 박 전 대통령이 일본 군대에 복무하면서 친일 행위, 구체적으로는 항일군 토벌에 나선 사실이 있느냐의 여부에 있다. 그런데 박씨와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1939년에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보병 8연대에 복무한 사실은 논외로 치고 일단 1939년 간도특설대에는 복무한 사실이 없다, 그래서 명예훼손이라는 이야기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사실에 대해서만 재판은 진행된다.

그러나 굳이 1939년으로 논의를 좁혀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은 1939년에 간도특설대에 복무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이를 놓고도 많은 주장과 근거가 엇갈린다. 이처럼 공인의 과거 행적 그리고 논란이 되는 역사적 사안에 대한 최종 판단을 검찰이나 법원이 내릴 수 있을까.

만약 이 사건이 명예훼손으로 결론난다면 박 전 대통령의 만주에서의 행적은 영원히 진실을 가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모든 다른 논의도 차단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아마 박씨 등이 원하는 바일 수도 있다. 공소장을 받고 나는 박씨의 대변인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그는 이 문제를 거론하는 모든 언론사를 고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왜냐, 거짓 주장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왜 거짓인가에 대해서 그는 답변하지 않았다. 법으로 가리자고만 했다.

참고 : 박정희의 친일, 진실과 명예훼손의 간격.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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