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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워텍, 그 뒷 이야기.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7, 2006

리타워텍 돌풍이 지나간 지 6년째지만 아직도 그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주가조작 혐의는 결국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고 최유신 등 문제의 주역은 여전히 주식시장을 활보하고 다닌다. 전성기만큼은 못하지만 아직도 그가 손을 대는 곳마다 주가가 뛰어오르고 만만치 않은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하버드대라는 간판이 만들어 냈던 허울 좋은 거품, 352만원에서 20원까지 추락하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던 리타워텍 열풍의 씁쓸한 뒷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모바일 게임 업체의 전아무개 부사장. 취재에 앞서 그는 익명을 요구했다. 부끄러운 이야기고 이제는 그만 덮어두고 싶다고 했지만 오해를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어렵사리 인터뷰를 허락했다. 그는 리타워텍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아직까지도 소송에 휘말려 있다. 한동안 신용불량자로 떠돌기도 했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회사는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에게 리타워텍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헤집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리타워텍 사람들을 처음 만난 것은 정보기술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3월이었다.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뛰어 올랐고 코스닥 시장은 수많은 벼락부자들을 만들어 냈다. 비온 뒤 돋아난 죽순처럼 온갖 아이디어를 들고 벤처기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씨네 회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전자상거래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었던 전씨는 언젠가 코스닥 시장에 등록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리타워텍 사람들이 전씨네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접근한 것이다.

리타워텍이라는 이름은 낯설면서도 신비하고 이상하게 매력적이었다. 이 회사의 원래 이름은 파워텍이었다. 보일러 송풍기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그해 1월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의 한 젊은이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이름이 바뀌고 인터넷 비즈니스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그 뒤 반년 남짓한 동안 이 회사는 20여개의 벤처기업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마구 부풀렸다. 매출액이 100배 이상 늘어날 거라거나 머지않아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라거나 온갖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고 전씨도 이에 혹했다.

“사장으로 앉아있긴 했지만 공돌이 출신이 뭘 알았겠어요. 비상장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때 리타워텍은 전씨네 회사 지분을 50% 인수하는 대신 전씨에게 그에 상당하는 만큼 리타워텍 주식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 전씨네 회사는 아직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벤처기업이었지만 리타워텍은 어엿한 코스닥 등록기업이었다. 전씨네 회사는 언제 코스닥에 올라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리타워텍 주식은 당장 코스닥에서 사고 팔 수 있었다. 전씨는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씨네 회사는 그렇게 리타워텍의 첫 번째 자회사가 됐다.

리타워텍이 전씨네 회사를 자회사로 만드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때만 해도 주식 맞교환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리타워텍이 전씨의 주식을 사고 동시에 전씨가 리타워텍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의 편법을 써야 했다. 리타워텍은 전씨네 회사의 가치를 40억원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50% 지분을 넘기면서 전씨가 받은 돈은 20억원. 그런데 전씨는 정작 이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전씨의 통장을 리타워텍에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돈의 대부분은 리타워텍의 유상증자에 들어갔다.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가 그대로 다시 빠져 나간 것이다. 결국 리타워텍은 주식 수를 늘리고 그 주식을 전씨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전씨네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한 셈이다. 40억원짜리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돈은 겨우 5억원이었다.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거래였지만 그때만 해도 윈윈 게임인 것처럼 보였다. 리타워텍은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촉망받는 기업이었고 첨단 벤처기업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고 있었다. 리타워텍이 인수한 벤처기업들은 모두 인터넷 인프라와 전자상거래, 기업자원관리(ERP)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었고 뉴스가 흘러나올 때마다 주가는 뛰어올랐다. 리타워텍의 자회사가 된다는 것은 코스닥 등록 못지않은 성공의 지표처럼 여겨졌다. 리타워텍은 그렇게 20여개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공룡으로 자라났다.

전씨는 주가조작 기업이라는 낙인이 가장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언론에 회사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거래처가 모두 끊겼고 회사는 개점 휴업상태로 들어갔다. 돈은 만져보지도 못했고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는데도 국세청은 엄청난 액수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전씨는 결국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가 직원들 월급과 퇴직금을 해결해주고 회사를 정리했다. 전씨는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간판에 속아 넘어가 일확천금을 노렸던 자신을 끊임없이 후회했다.

리타워텍 신드롬이라고 부를만한 이 열풍을 불러일으킨 하버드대 출신의 젊은이가 바로 최유신이었다. 1970년생, 미국 이름은 찰스 스팩맨이다. 최석진 한국푸르덴셀생명보험 회장의 아들인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자딘플레밍증권 한국 지사와 스미스바니은행 한국 지사 등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27세의 나이로 리타워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중국에 건너 간 그는 춘큐 그룹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공격적인 인수 합병에 나선다.

1998년에는 쥬싱텔레콤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가 6개월 만에 삼성전자에 넘겨 6천만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가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99년 <포츈>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면서부터다. <포춘>의 커버스토리 제목은 “정보기술 인수합병의 예술”이었다. 하버드대 출신의 젊은 인수합병 전문가, 그가 거느린 주옥같은 정보기술 자회사들, 게다가 <포츈>의 표지 모델이라는 화려한 후광까지, 그 무렵 정보기술 열풍을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그는 신화가 되기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주가가 뛰어오른 것도 그때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리타워텍의 주가는 그해 1월 2천원 언저리에서 5월에는 362만원까지 뛰어올랐다. 코스닥 시가총액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매출 43억원에 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던 회사의 주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때는 아무도 과거 실적은 보지 않았다. 모든 주가에 거품이 끼어있었고 리타워텍이 특히 심했을 뿐이다.

리타워텍의 가장 큰 모험은 아시아넷 인수였다. 아시아넷은 홍콩에 있는 최유신 소유의 인터넷 기업이었는데 자회사가 22개나 됐다. 아시아넷을 인수하는 과정도 전씨네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과 완벽하게 같았다. 그해 7월 21일 리타워텍은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에서 1조4천억원을 빌려온다. 이 돈은 리타워텍의 계좌에서 곧바로 홍콩의 아시아넷 계좌로 옮겨갔고 몇 시간 뒤 아시아넷은 리타워텍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이 돈을 다시 리타워텍 계좌로 입금한다.

리타워텍이 이 돈을 다시 리먼브러더스에 송금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3시간. 그렇게 1조4천억원이 한바퀴 돌고 난 뒤 아시아넷의 지분은 100% 리타워텍의 소유가 됐다. 리타워텍이 아시아넷의 지분을 100% 사들이고 아시아넷이 그 돈으로 리타워텍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맞교환한 것이다. 그 3시간 동안 지불한 이자만 무려 44억원이나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을만큼 큰 규모의 거래였다.

문제는 리타워텍의 인수합병 모델이 주가가 계속 오르거나 오를 거라는 전망이 있을 때만 가능한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리타워텍은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우량 벤처기업들의 경영권을 넘겨받았고 그 기업들 창업자들은 그 대가로 리타워텍 주식을 받아 시세차익을 기대했다. 만약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된다. 외형은 크게 늘어났지만 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걸 투자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만 하버드대 출신의 젊은 최유신이 무엇인가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수합병이 주춤하자 주가는 곧 추락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떠돌았던 시너지 효과는 끝내 증명되지 못했고 자회사들 실적도 기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해 5월 362만원이던 주가가 11월에는 20만원까지 빠졌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이어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미국인 신분이었던 최유신은 재빨리 홍콩으로 출국했고 허록 사장은 그 이듬해인 2001년 3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리타워텍 신화의 마지막은 그렇게 허무하고 참담했다.

리타워텍은 2000년에 매출액 2억원에 당기순손실이 무려 1조5150억원이나 됐다. 매출액의 7천배 이상 적자를 낸 것이다. 그의 자회사들 가운데 제대로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거의 없었다. 1조4천억원을 들여 인수한 아시아넷 역시 적자투성이였다. 국세청은 2003년 1월 리타워텍에 453억원의 세금을 부과했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리타워텍은 감사의견 거절로 코스닥에서 퇴출된다. 물론 453억원의 세금은 아직까지도 미납 상태다. 퇴출 직전 리타워텍의 주가는 20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반전은 이제부터다. 법원은 2002년 8월 리타워텍의 주가조작 혐의 등에 대해 대부분 무죄 판결을 내린다.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서 주가를 띄운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주가 조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 일부 과장 또는 허위 공시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을 뿐 허록 사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홍콩으로 도망갔던 최유신도 돌아와 활동을 재개한다.

리타워텍의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활용한 주식 맞교환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1조4천억원을 동원한 아시아넷 인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외형만 늘어났을 뿐 특별한 시너지 효과가 없었는데도 주식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고 주가가 터무니없이 뛰어올라 선의의 피해자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례가 없을만큼 엄청난 주식거품을 만들었던 리타워텍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돌아온 최유신이 처음 손을 댄 것은 키이엔지니어링. 무죄 판결이 나고 한 달 뒤인 2002년 9월의 일이었다. 조세회피지역인 버뮤다에 본사를 둔 컨설러데이티드라는 회사가 키이엔지니어링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이 회사가 최유신의 스팩맨그룹 자회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키이엔지니어링의 주가는 10일 남짓한 동안 3배 이상 뛰어올랐다. 과거 리타워텍 열풍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키이엔지니어링은 공업용 소각로를 만드는 회사였다. 굴뚝기업이라는 점에서 과거 리타워텍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3자 배정 유상증자로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점도 비슷했다. 리타워텍 때와 달리 컨설러데이티드라는 해외 페이퍼컴퍼니가 끼어들었다는 점이 달랐다. 컨설러데이티드는 이듬해인 2003년 4월, 역시 3자 배정 유상증자로 씨큐어테크의 경영권을 확보한다. 보안 솔루션을 만드는 씨큐어테크는 나중에 씨큐리콥으로 이름이 바뀌고 최유신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최유신은 그 뒤로도 컨설러데이티드나 키이엔지니어링을 내세워 유니보스아이젠텍과 이노티지 등의 경영권을 잇따라 확보하는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섰다. 모두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이었다. 그러나 2000년과 달리 이들의 주가 급등은 10일을 넘지 못했다.

그나마 최유신의 전략이 빛을 발했던 것은 2004년 1월 국내 최대의 영화제작사 싸이더스를 인수하면서다. 이때도 역시 싸이더스의 차승재 사장과 싸이더스의 주주인 로커스 김형순 사장, 플레너스 등을 상대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싸이더스의 지분은 100% 씨큐리콥이 갖게 됐고 싸이더스의 최대주주였던 차승재 사장은 씨큐리콥의 지분 5.8%를 갖게 됐다. 씨큐리콥은 그해 6월 회사 이름을 싸이더스로 바꾼다. 싸이더스가 씨큐리콥을 통해 우회등록을 한 셈이다.

싸이더스는 그 뒤 <살인의 추억>과 <범죄의 재구성> 등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된다. 최유신은 싸이더스의 지분을 2004년 10월과 2005년 2월 두차례에 걸쳐 차승재 사장에게 매각해 34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벌어들였다. 투자 수익률은 무려 120%나 됐다. 최유신이 빠져 나간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여러가지로 나뉜다.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현금 여유가 생긴 차승재 사장이 지분 매각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고 최유신이 먼저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최유신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싸이더스는 주가가 오히려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최유신의 악명이 높았던 탓이다. 최유신은 이어 2005년 6월 키이엔지니어링 지분까지 전량 매각, 우리나라를 떠나는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불러일으켰다. 2년 동안 투자했다가 얻은 시세차익은 20억원, 한창 잘 나가던 때와 비교하면 그리 큰 이익은 아니었다. 이밖에도 컨설러데이티드는 한국와콤전자나 영동환경엔지니어링 등 저가 주식을 잠깐씩 샀다 팔기도 했지만 이익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큰 손 최유신이 작은 손이 됐다는 비아냥이 나돌기도 했다.

컨설러데이티드는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보안업체인 넷시큐어테크놀로지 주식을 사들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3자 배정 유상증자를 동원해 경영권을 장악하던 과거와 달리 장내에서 차곡차곡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넷시큐어 쪽에서 감자와 증자 등으로 우호지분을 늘려 경영권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최유신은 금융감독원에 단순 투자목적이라고 주식취득 사유를 밝혔지만 한동안 이를 두고 어려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한편 최유신이 돌아오더라도 과거와 같은 대박을 터뜨리기는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많다. 우리 주식시장이 2000년 보다 크게 성숙한데다 이제는 단순히 인수합병의 소문만으로 주가가 오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최유신에 대한 불신이 커서 쉽게 투자자들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망이 많다.

최유신은 최근에도 홍콩과 국내를 넘나들며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론 접촉은 꺼리고 있다. 최유신과 스팩맨그룹은 최근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2월에는 계열사인 플랫폼미디어그룹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파야를 인수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인수 조건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3월에는 뉴욕의 헤지펀드 회사인 인피티니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역시 인수 조건은 밝히지 않았다.

스팩맨그룹 관계자가 이메일로 보내온 답변에 따르면 이 그룹의 자산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2억달러에 이른다.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이 그룹은 지난 9년 동안 6개국 70여개 사업에 총 22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리타워텍과 관련된 세금 소송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국세청이 리타워텍의 자회사들에 수억원씩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는데 이에 불복해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 전씨를 비롯해 자회사 사장들은 1년 동안 보호예수에 묶여 주식을 팔 수도 없었던 데다 정작 주식을 팔 수 있는 시점이 됐을 때는 주가가 폭락해 오히려 크게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익은커녕 엄청난 손해를 보고 회사까지 파산한 상황에서 많게는 5억원에 이르는 소득세를 내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기각판결을 받고 항소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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