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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이 도서관까지 집어삼킨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21, 2006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북토피아 제작 공장. 책의 미래와 더 나아가 지식 콘텐츠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만드는 놀라운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00여명에 이르는 조선족 동포 직원들이 이곳에서 하루 종일 하는 일은 인쇄된 책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가 지난 수천 년 동안 쌓아올린 문화 콘텐츠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식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출판사에서 출력 직전의 데이터 파일을 넘겨받아 텍스트를 그대로 뽑아내는 것. 두 번째는 데이터 파일이 없는 오래된 책의 경우, 책을 보면서 직접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 이밖에도 이미지 스캔을 받아 문자 인식 프로그램을 돌리는 방법도 있지만 인식률이 그리 높지 않아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북토피아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6만권 이상의 책을 디지털로 옮겼다.

북토피아의 제작 공장이 멀리 연변까지 나간 것은 당연히 인건비 부담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국내의 3분의 1 정도 인건비로 이런 단순 작업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북토피아 유윤선 이사는 “아직은 최근 출간된 책들을 소화하기도 바쁜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과거에 출간된 책까지 모두 텍스트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파일로 저장되는 이른바 디지털 도서관의 꿈도 멀지 않은 셈이다.

진짜 놀라운 것은 그 다음부터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2004년 7월부터 북토피아의 데이터베이스를 넘겨받아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정 검색어를 기준으로 1천자 분량, 검색어를 바꿔 집어넣으면 책 전체 분량의 최대 10%까지 본문을 읽을 수 있다.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검색어만 잘 집어넣으면 웬만큼 궁금한 내용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공짜라는 사실이다.

북토피아는 원래 전자책을 만드는 회사다.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고 전자책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팔고 매출에 따라 그 이익을 출판사와 배분한다. 북토피아 입장에서는 도서 본문검색이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본문의 일부를 읽고 마음에 들면 전자책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격이 4천원 정도로 인쇄된 책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은 해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네이버 입장에서도 질 높은 콘텐츠들을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본문 검색은 끔찍하게 매력적이다. 네이버는 그동안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 가는 지식 검색으로 큰 재미를 봤는데 정작 여기저기서 퍼온 글이 대부분이고 당연히 깊이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수천만권의 책을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수 있다면 네이버는 그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네이버가 본문 검색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본문 검색은 그야말로 계륵 같은 존재다. 얻는 건 그리 신통치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면 그 불이익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특정 검색어로 검색을 했을 때 이왕이면 한번이라도 더 많은 잠재 고객들에게 노출이 되는 게 당연히 판매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만약 잠재 고객들이 공짜 본문 검색만 이용하고 정작 책을 사지 않는다면 그만큼 손해가 된다.

결국 출판사 입장에서는 본문 검색을 마냥 반길 수도 없고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네이버와 네이버 사용자들의 무임승차를 막으려면 그만큼 네이버 사용자들에게 노출돼 부가적인 판매를 끌어낼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 다른 출판사들이 모두 본문 검색을 허용한다면 빠지는 출판사만 손해다. 어떤 출판사도 거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영향력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 본문 검색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출판 시장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머지않아 포털 사이트의 본문 검색이 정보를 찾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수많은 책을 하나하나 들춰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입장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책을 검색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빨리 찾아낼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관건이 된다.

네이버뿐만 아니라 다음과 네이트, 엠파스 등 다른 포털 사이트들도 앞 다퉈 본문 검색 서비스를 이미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교보문고와 손을 잡았고 네이트와 엠파스는 네이버의 뒤를 따라 북토피아에 손을 뻗쳤다. 다음은 아예 교보문고의 유상증자에 참여, 15%의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업계 1, 2위인 네이버와 다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북토피아와 교보문고가 그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북토피아가 본문을 텍스트 형태로 제공한다면 교보문고는 본문의 편집 스타일을 살려 PDF 파일 형태로 제공한다는 점이 다르다. 출판사에서 받은 파일을 그대로 PDF 파일로 변환하는 것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저자의 저작권뿐만 아니라 출판사의 기획 요소와 판면권까지 보장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텍스트만 뽑아내는 게 아니라 책장을 넘기는 것과 똑같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최근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등과 제휴를 맺고 이들 도서관의 소장 도서와 논문의 본문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570만여권의 도서가 있는데 이 가운데 1950년 이전에 발행돼 저작권 문제가 없는 20만여권은 원문이 100%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저작권이 있는 도서는 북토피아의 경우처럼 100%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되 검색어 앞뒤로 1천자 정도만 공개할 계획이다.

한편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본문의 일부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고 책의 서사적 흐름을 무시하고 정보를 파편화한다는 비난도 거세다. 책의 해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고 포털 사이트가 문화 권력화하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출판인회의는 네이버와 다음 등에 본문 검색의 확대를 우려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는 이미 디지털 도서관 작업이 상당 부분 진척돼 있다. 구글은 일찌감치 구글 프린트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모든 활자 인쇄물을 디지털로 옮기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글은 뉴욕 국립도서관은 물론이고 하버드와 스탠퍼드, 옥스퍼드 등 세계 유수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도서들의 목록을 구축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다.

구글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 8개국까지 대상 지역을 확대했다. 구글에 뒤질 새라 야후도 열린 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영국 국립문서국과 유럽 문서국 네트워크, 뉴욕 프렐링거 문서국을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도서관과 캐나다 토론토대학 도서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PDF 프로그램을 만드는 어도비와 프린터 제조업체인 HP, 정보기술 전문 출판사인 오라일리 미디어 등도 기술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전자책 시장 올해 1천억원 넘는다.

교보문고 추산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종이책과 비종이책의 시장 비중은 각각 97%와 3%씩이다. 그런데 2010년이면 이 비율이 88%와 12%로 좁혀들게 된다. 종이책의 온라인 판매 비중도 20%에서 30%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전자책컨소시엄 전망에 따르면 올해 전자책 시장은 지난해 55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4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전망이 밝은 것은 올해가 유비쿼터스 전자책의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란 전자책을 한번 사면 유무선 PC와 휴대전화, PDA(개인 휴대 단말기) 등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디지털미디어방송(DMB)과 휴대 인터넷의 확산에 따라 시장 규모는 내년이면 3천억원 규모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북토피아는 시장 확대를 위해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제휴를 맺고 종이책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전자책을 무료로 얹어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종이책이 배송되기 전이나 배송된 뒤에도 휴대전화 등으로 얼마든지 책 내용을 볼 수 있다.

한편 온라인 도서관도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구비하는 도서관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 납품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346억원 규모, 전체 시장의 63%에 이른다. 올해부터는 기업체 자료실이나 공공기관으로 판로가 확대될 전망이다.

분야별로는 가정생활과 취미, 여행 분야에서 전자책 판매 비중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컴퓨터와 인터넷, 경제, 비즈니스 분야도 평균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인문과 대학교재 분야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젊은 세대들이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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