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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보험 시장 개방은 재벌의 음모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9, 2006

정부가 보증보험 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내부 검토에 들어갔고 곧 공청회도 열릴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증보험회사인 서울보증보험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장을 넘보게 된 손해보험회사들은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보증보험 시장 개방, 과연 독일까 약일까. 정부는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보증보험 시장개방 문제가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와 규제개혁위원회가 보증보험 업무를 민영 손해보험회사들이 취급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고 권고하면서부터다.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구 용역을 맡겼고 1차 보고서가 나온 상태다. 금감위나 KDI는 보고서 내용을 철저히 함구하고 있지만 규개위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와 규개위는 보증보험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면 보험료가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상품이 개발돼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서울보증보험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의 회수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독점 상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있다. 무엇보다도 보증보험 시장개방이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에게 특혜를 주는데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보증보험 시장개방이 가져올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 둘째, 과당경쟁으로 보증보험 시장이 송두리째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 셋째, 중소기업과 개인 신용공여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핵심은 시장개방을 단순히 서울보증보험의 독점을 깨뜨리는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자세히 짚어보자.

보증보험 시장을 개방하면 누가 들어오게 될까.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손해보험회사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손해보험 시장은 삼성화재와 현대해상화재, LIG손해보험(옛 LG화재), 동부화재 등 네 개 회사가 60% 이상을 과점하고 있다. 보증보험 시장이 개방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개방이 자칫 이들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에 시장을 넘겨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이 개방되면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다. 손해보험과 달리 보증보험은 기업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보증보험 시장이 개방되면 재벌계열회사들이 금융기관 대출을 받을 때 계열 손해보험회사들이 보증을 맡게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부실 계열회사 부당지원이 될 수도 있고 부실이 손해보험회사를 거쳐 금융기관에 전가돼 자칫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삼성건설의 대출에 삼성화재가 보증을 맡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삼성건설이 재무적으로 안정된 우량 회사지만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계열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계열 손해보험회사가 보증을 맡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한다는 원칙에 따라 재벌의 은행 소유가 금지돼 있지만 정작 보증보험 시장이 개방될 경우 이런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이 건설보증 수요를 싹쓸이할 가능성도 있다. 건설보증이란 입찰보증이나 공사이행보증,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등 건설공사의 신용위험을 담보하는 보증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서울보증보험과 건설공제조합, 대한주택보증 등이 나눠맡고 있는데 만약 이 시장에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이 뛰어들게 되면 계열 건설회사들 보증 수요를 고스란히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도 서울보증보험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증보험 업무만 맡는 곳, 이를테면 전업 보증보험회사는 서울보증보험 한 군데 밖에 없지만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 수출보험공사, 8개 공제조합과 대한주택보증 등이 보증업무를 나눠맡고 있다. 이미 충분히 경쟁시장이라는 이야기다. 굳이 이 시장을 손해보험회사들에게 추가로 개방해야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보증보험 시장개방은 결국 수요 확대가 아니라 공급 확대다.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파이를 나눠먹겠다고 서로 덤벼드는 꼴이다. 지난해 서울보증보험의 보증 수수료는 9188억원, 손해보험 시장의 3.6% 수준 밖에 안 된다. 그런데 손해보험회사들까지 이 좁은 시장에 뛰어들면 심각한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손해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지만 서울보증보험 입장에서는 생존 경쟁이다.

경쟁의 핵심은 위험 부담이 낮은 우량 기업들의 보증 수요를 누가 더 많이 끌어들이느냐에 있다. 이 경쟁에서는 당연히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이 더 유리하다. 문제는 시장의 관심이 재벌계열회사를 비롯해 우량 기업에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중소기업이나 개인들 보증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보증보험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량 기업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보증 수수료가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시장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다. 짚고 넘어갈 것은 보증 수수료와 은행 대출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보증 수수료가 낮아진다고 해서 은행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보증보험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은 한정돼 있거나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축소되고 그나마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다는 이야기다.

서울보증보험으로 통합되기 이전,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경쟁하면서 손해율이 80%를 웃돌았던 경험을 떠올릴 필요도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손해보험회사들의 자동차보험 부실만 봐도 과당 경쟁의 폐해를 쉽게 전망할 수 있다. 문제는 손해보험과 달리 보증보험은 자칫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과당 경쟁으로 상위 10대 보증보험회사 가운데 7개 회사가 파산하거나 철수한 사례가 있었다.

가뜩이나 서울보증보험의 경우는 공적자금 회수도 걱정거리다. 서울보증보험은 IMF 외환위기 이후 10조25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다. 이 가운데 올해 2월 유상감자로 예금보험공사가 회수한 공적자금이 5456억원, 나머지는 여전히 묶여 있는 상태다. 만약 서울보증보험이 다시 부실화될 경우 나머지 공적자금은 받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서라도 보증보험 시장개방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증보험 시장개방의 반대 논리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장개방은 우량한 시장과 그 밖의 시장을 나누게 될 것이다. 우량한 시장은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에 독점되고 서울보증보험은 그 밖의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이나 일반인 보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실이 늘어나면서 보증보험 시장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 시장개방은 결국 재벌의 요구 때문이다.”

심지어 손해보험 노조에서도 보증보험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보증보험 시장개방이 손해보험회사들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칫 동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화용 위원장은 “보증보험 업무를 할 수 있는 손해보험회사는 삼성화재 밖에 없다”며 “정부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전면 개방 운운하는 것은 특정 자본의 로비에 휘말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증보험 시장개방을 둘러싼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험개발원과 국토연구원 등에서 여러 차례 시장개방을 검토했는데 그때마다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나왔다. 손해보험회사들의 동반 부실 우려가 있고 중소기업이나 일반인들의 보증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동북아시대위원회나 재경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금감위나 KDI는 연구용역 결과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6월 19일로 예정된 공청회까지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내년에 개인 보증을 개방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전 개방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금감위는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금감위 보험감독과 도규상 과장은 “규개위에서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연구용역을 맡겼을 뿐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KDI는 아마도 건설회사들 불만이 많은 건설보증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이 활성화 되면 보증 수수료가 낮아져 건설회사들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또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손해보험회사들의 수익 기반을 넓힌다는 명분도 있을 수 있다. 가장 그럴듯한 명분은 손해보험과 보증보험을 결합한 복합금융상품 등을 개발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두 보증보험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결과다. 보증보험 시장이 우량 기업 중심으로 축소되고 결국 손해보험 시장에 흡수될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증보험 시장이 무너지면 신용이 부족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과 개인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공적자금이 투입돼 정부의 규제를 받는 서울보증보험이 아니라면 누가 그 위험을 감당할 것인가.

특히 정부는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이 보증보험 시장을 장악하는데 따른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다. 서울보증보험 노조 최규송 부위원장은 “은행과 마찬가지로 보증보험에도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라는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부위원장은 “손해보험과 보증보험은 엄밀히 다르다”며 “재벌계열 손해보험회사들이 보증보험 시장에 진출하려면 먼저 계열사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보증보험 시장개방은 미국의 요구이기도 하다. 올해 2월 미국 무역대표부에서 나온 무역장벽보고서에는 금융시장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보증보험 시장에 정부 지원을 금지하고 외국 보험회사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이 같은 내용이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분위기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의 임수강 보좌관은 보증보험을 시장원리에 맡기기 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보호하고 경쟁을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증보험의 공공성이 시장원리에서는 지켜지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 보좌관은 “발상을 바꾸면 저소득 계층의 신용대출에 보증보험을 활용하고 정부가 이를 보조하는 정책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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